삼성이 7일 사장단협의회 산하 상설기구로 '인사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것을 시작으로 경영조직 재정비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삼성은 늦어도 이달 말까지 경영진에 대한 인사를 마무리짓고, 임원급 인사와 조직개편, 계열사별 1분기 전략회의를 2월 안에 모두 끝낸다는 방침이나, 이른바 '삼성사건'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 시기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사위 설치 배경과 역할 = 삼성이 인사위를 설치하기로 한 것은 세계경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경영조직 정비를 미룰 수 없다는 상황인식과 함께 인사행위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은 이날 오전 사장단협의회에서 "글로벌 경제불황이 외환위기 시절보다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조만간 인사를 마무리하고 경영진과 경영조직을 전면 재정비해 경영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며 인사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삼성은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에 인사위를 둔 적이 있으나, 이건희 전 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이런 기구를 둔 적이 없다.

인사위원회는 이미 설치돼있는 투자조정위원회, 브랜드조정위원회와 함께 사장단협의회 산하 3개 상설기구의 하나로 기능하게 된다.

아직 누가 위원장을 맡을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6∼7명 정도의 시니어 사장급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위는 구체적인 인사내용보다는 인사의 시기와 방향에 대한 경영진 내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주로 할 것으로 알려졌고, 사장단 인사에 대해서도 원칙과 기준 정도를 논의하게 될 전망이다.

인사위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능은 사장단협의회를 지원하는 업무지원실이 맡게 된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인사위는 인사의 시기와 방향 등에 대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차원이 될 것"이라며 "계열사 채용 규모, 우수인력 우대 방안 등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인사 시기.절차.규모 = 삼성 사장단 인사는 늦어도 1월중에 내정자 발표가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2월말 또는 3월초 주주총회를 열어 등기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를 열어 대표이사를 확정하는 법률적 절차가 있지만, 실질적인 사장단 인사와 기본적인 경영조직 정비는 1월말 이내에 끝나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이수빈 회장이 인사위 설치를 제안한 만큼 빨리 진행될 것"이라며 "세계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난리통인데 전열을 빨리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1월중에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법원 재판과 인사 시기는 무관하다"고 강조했지만, 대법원 확정판결 일자가 이달 중순과 월말 중에서 어느 쪽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사장단 인사 규모는 예년과 같은 4∼6명을 교체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동안 삼성 안팎에선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경영조직 '혁신' 또는 '쇄신'이 강조되면 인사가 큰 폭으로 단행되고, '경제위기'가 강조되면 연속성 유지를 위해 소폭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이에 따르면 이수빈 회장이 이날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체제 정비"를 강조한 것은 조직을 뿌리째 흔드는 대규모 혁신인사보다는 안정성과 미래환경 대응을 동시에 추구하는 수준의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장단 인사 결정권자는 = 문제는 사장단 인사를 누가 결정할 것이냐는 것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대주주인 이건희 전 회장의 의중이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 "이 전 회장은 일절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삼성의 사장단들은 40년 안팎을 함께 부대껴온 사람들이어서 누가 물러나고 누가 남아야할 사람인지, 실적과 연령, 사장 재임기간 등 여러 기준들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이심전심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율적인 교통정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5월 인사 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장직에서 물러난 삼성테크윈 이중구 상담역의 선례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삼성이 지난해 7월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출범시킨 이후 사장단을 포함한 대규모 인사를 처리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이번 인사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삼성이 독립경영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