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낮춰주면 미분양 사겠다"..가격 흥정도

아파트 할인 분양이 유행하면서 건설업계가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는 수요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변 시세가 떨어졌으니 분양가를 낮춰달라는 계약자들의 항의는 기본이고, 최근엔 미분양을 살테니 그 대가로 분양가를 인하해달라는 수요자까지 등장했다.

건설사 분양 담당자들은 "요즘 소비자들은 아파트 분양가를 시장의 물건 가격 깎듯 흥정하려고 든다"며 "신규 계약자에게만 분양가를 깎아줄 경우 기존 계약자의 집단 민원 사유가 되기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혀를 내두른다.

실제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아파트를 분양중인 우남건설에는 요즘 "분양가를 낮춰주면 사겠다"는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인근의 김포 고촌 월드메르디앙이 중대형 미분양의 분양가를 할인해주는 만큼 우남건설도 분양가를 깎아달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라 인하가 어렵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라며 "미분양 팔리는 속도는 더딘데 분양가를 낮춰달라는 문의전화는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용인 성복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중인 현대건설과 GS건설에는 계약자들의 분양가 인하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

인근 신봉지구에서 동일하이빌이 아파트를 4-10% 할인분양하자 성복지구 힐스테이트와 자이를 분양받았던 계약자들이 앞다퉈 분양가 인하나 계약조건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삼성물산도 용인 동천동에 분양한 래미안 아파트 기존 계약자들이 인근 집값이 하락으로 분양가를 낮춰달라며 요구해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용인지역의 한 분양업체 관계자는 "주택시장 침체를 반영하듯 계약자와 구매 예정자들의 분양가 인하 요구가 모델하우스 문의전화의 대부분을 차지할 지경"이라며 "지금은 할인분양을 해도 팔릴 분위기가 아니어서 분양가를 낮춰주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이라고 말했다.

미분양 판매 촉진을 위해 막상 분양가를 낮춘 업체는 계약자들과의 갈등으로 괴롭긴 마찬가지다.

월드건설의 경우 이달 초 김포 고촌 월드메르디앙의 분양가를 3천300만-3천700만원 인하하자 기존 계약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 아파트 예비 입주자 연합회측은 "신규 계약자에게만 분양가를 할인해주면서 142㎡를 분양받은 기존 계약자보다 159㎡ 미분양을 할인 구매한 신규 계약자가 1천만원을 더 싸게 분양받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분양가 인하를 소급 적용해주는 등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을 경우 계약해지 소송을 제기하고 중도금 납입을 보류하겠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월드건설 관계자는 "분양가 인하는 시행사 결정에 달려 있지만 기존 계약자가 60%나 되는 상황에서 분양가 인하를 소급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분양가 할인은 대형 미분양 판매 부진에 따른 고육책인 만큼 계약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분양가를 둘러싼 건설사와 소비자의 갈등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분양대행사 대표는 "건설사들은 미분양 증가에 따른 유동성 위기에다 계약자들의 민원까지 이중, 삼중고에 처해 있다"며 "실물경제와 주택시장이 회복되지 않는 한 건설사가 분양가를 낮춰 파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s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