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개봉작 잇단 흥행 실패, 의외의 흥행작 속출

겨울 극장가에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와이드릴리스로 공세를 펼치던 기대작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는 한편 의외의 영화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5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24일까지 76만5천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고, CJ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 '달콤한 거짓말'은 480개의 스크린으로 관객 공략에 나섰지만 오프닝주 박스오피스 7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냈다.

반대로 기대 밖의 흥행작도 속출하고 있다.

'과속 스캔들'은 260만명을 동원하며 3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질주하고 있고, 수입가 1천만원에 광고도 없던 스웨덴 공포영화 '렛 미 인'은 8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깐깐해진 네티즌, 좋은 영화에 좋은 입소문 = 이처럼 의외의 흥행 성적이 잇따라 나오는 결정적인 계기로 영화계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꼽고 있다.

대규모 배급과 광고 공세를 펴도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이 나빴던 영화는 관객들에게 철저한 외면을 받는 대신 좋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열광은 순식간에 퍼져 의외의 흥행작을 만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ㆍ배급사 관계자는 "이제는 더 이상 힘으로 관객들을 몰아붙일 수 없는 시대가 온 셈"이라며 "결국 영화 콘텐츠 자체가 얼마나 양질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1주일 단위로 관객수 감소율(드롭률)을 따졌지만 요즘에는 관객들의 입소문이 빨라 반응이 좋지 않은 영화는 개봉 주말 토요일이면 관객 감소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크다"며 "손을 쓸 틈도 없이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소문이 흥행에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의 경우 입소문의 중요성은 퍼져나가는 속도나 영화의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 면에서 과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다.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팀장은 "입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네티즌들이 능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네티즌들은 신뢰성이 있는 입소문만 깐깐하게 골라낸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개봉 전부터 아르바이트직원을 고용해 포털사이트의 영화 평점이나 댓글 등에 영화에 우호적인 글을 쓰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요즈음에는 네티즌들이 이를 믿지 않는다는 게 영화사 마케팅팀의 일반적인 얘기다.

김 팀장은 "영화가 개봉한 뒤에는 별점 참여자의 수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끄는 게 불가능하다"며 "어설픈 가짜 정보는 오히려 영화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영화가 반응이 좋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마케팅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화 블로그 인기도 한몫 = 영화의 입소문을 접하는 네티즌들의 자세가 깐깐해진 것은 인터넷 정보가 영화 게시판처럼 포털사이트가 마련해 놓은 장소에 한정되는 것에서 벗어나 네티즌들이 스스로 만들어 정보의 신뢰도가 높은 블로그로 이동한 덕도 크다.

최근들어 영화사들은 테스트 시사회 이후 관객 반응이 좋은 영화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의 오피니언 리더인 '파워 블로거'들을 모아 시사회를 열어 적극적으로 영화를 홍보하고 있고 이들을 통한 호평은 다른 블로그로 옮겨지며 입소문이 확산된다.

'과속 스캔들'의 마케팅을 담당한 영화인의 장비견 대리는 "테스트 시사 결과 '과속 스캔들'이 4.1~4.2점의 좋은 점수를 받자 입소문을 퍼트리기 위해 개봉 전 열흘간 5만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사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장 대리는 "의심이 많은 요즘 네티즌들을 설득시키는데는 글보다는 직접 네티즌들이 보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홍보 효과가 크다"며 "'과속 스캔들'의 경우 아역배우의 모습을 모아 재미있게 편집한 동영상을 주요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놓고 관심 있는 네티즌들이 이를 퍼가는 식으로 좋은 반응을 확대시켰다"고 덧붙였다.

영화계에서는 '입소문'의 중요성이 커지며 흥행에서 희비가 교차하고 있는 최근 상황을 배급이나 마케팅에서의 거품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배급이나 마케팅 규모가 아니라 콘텐츠 자체가 흥행을 결정하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반응이 좋지 않은 영화를 무리하게 크게 벌리는 일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테스트 시사회처럼 관객 반응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도구의 신뢰도가 지금보다 높아질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