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세계 각국에서는 글로벌 위기 대처법으로 '브라운식 모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브라운식 모델이란 영국의 현 총리인 고든 브라운의 이름을 따 붙인 용어로,국가의 콘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해 모든 정책은 적기에 결정하고 국민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대규모로 신속하게 추진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리먼 사태 이후 기준금리를 내릴 때 최소한 두 단계 이상 가져가는 '빅 스텝(big step)' 정책을 들 수 있다. 심지어 잉글랜드은행은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여섯 단계인 1.5%포인트 내린 적이 있고 우리도 네 단계인 1%포인트를 내렸다.

'빅 스텝' 금리 인하로 주요국의 기준금리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제로'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의 연방기금 금리는 0~0.25%,일본의 기준금리는 0.1%로 더 이상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

기준금리가 '제로' 시대에 접어들면 국민들은 양면성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한쪽에서는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게 된 만큼 앞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하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기준금리가 '제로'가 되면서 돈이 많이 풀린 상황에서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양적 완화 정책(quantative easing policy)'을 들고 나온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이 정책은 기준금리를 '제로' 로 내리되 금리인상 예상심리를 차단하기 위해 '제로' 수준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앞으로 민간채권을 사들이거나 팔아서 유동성을 조절해 나가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양적 완화정책이 시행되면 무엇보다 국민들의 디플레 기대심리를 차단시켜 지갑을 열게 하는 소비자극 효과가 가장 크게 기대된다. 또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를 끌어내려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달러 약세로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효과도 바라볼 수 있다. 소비 투자 수출 등 성장의 3대 축이 살아난다면 경기는 회복되게 마련이다.

지금 같은 위기시대에 양적 완화정책을 추진할 경우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단으로는 '문고리 정책(door-knob policy)'이 예상된다. 이 정책은 최소한의 담보로 침실의 문고리만 마련되면 돈은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다는 중앙은행의 특권을 비유해 만든 용어다. 문고리 정책의 최대 약점은 돈이 많이 풀리면 금리가 곧바로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우려지만,물가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를 때까지 기준금리를 '제로'로 오랫동안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선언하는 식으로 보완해 나간다.

앞으로 문고리 정책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양적 통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증시에서는 유동성 장세가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경제를 더 망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지만, 지금처럼 '주가 하락→추가 부실발생→위기책 무력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주가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위기 극복과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논리에 밀렸다. 이에 따라 미국도 종전 의 입장을 수정했다.

외환시장도 증시 이상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미국이 '제로'로 금리를 내린 이후 엔·달러 환율이 87엔 선까지 떨어져 이러다간 1990년대 중반처럼 80엔 선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신(新)엔고발 잃어버린 10년'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 우려를 조기에 차단할 목적으로 기준금리를 서둘러 0.1%로 인하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약세로 자국통화가 평가 절상된다면 수출 감소와 추가적인 경기침체가 불가피하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모기지발 금융위기 극복에 가장 필요한 각국의 정책협조를 이끌어 내고 위기 극복 비용을 분담해 나가겠다는 미국의 숨은 의도다.

그동안 대공황 연구에 몰두해온 오바마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최근에 대공황 전문가로 알려진 벤 버냉키 현 FRB 의장에게 힘을 더 실어주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