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에 버려진 아기가 농무장관에 오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에 의해 차기 행정부의 농무장관에 발탁된 톰 빌색(58)은 고아라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주류사회에서 일가를 이룬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인물이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태생인 빌색은 태어나자 마자 가톨릭 고아원에 버려진 후 수 개월만에 버드와 돌리 빌색부부에게 입양됐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였던 양어머니 돌리는 소년 빌색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양어머니는 종종 다락방으로 사라져 몇 주일간 술을 마시곤 했다.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다락에서 술병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는 게 빌색의 회고담으로 회자된다.

빌색은 한때 자신의 이런 유년시절을 회고하면서 "내일이 오늘보다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젊은이들이 내가 겪었던 상황을 겪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양아버지는 부동산 중개와 보험 판매업을 했으나,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늘 힘들어 했다고 빌색은 기억하고 있다.

빌색은 이런 역경을 딛고 가톨릭 신앙의 힘에 의지해 반듯하게 성장했고, 양부모들도 개인적인 `결함'이 있기는 했지만 빌색을 뉴욕 해밀턴대에 진학시킬 정도로 뒷바라지에는 열성적인 편이었다.

그는 알바니 로스쿨을 다니면서 크리스티 벨을 만나 결혼한 뒤 아내의 고향인 아이오와주 마운트 플레전트에서 장인과 함께 변호사업을 하면서 `성공시대'를 위한 본격적인 기초를 닦는다.

1987년 마운트 플레전트 시장에 당선, 정계입문의 첫 테이프를 끊은 뒤 아이오와주 상원의원(1992), 아이오와 주지사(1998)에 선출되는 등 승승장구한다.

특히 빌색은 민주당 출신으로는 30년만에 아이오와 주지사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2002년 아이오와 주지사에 재선한 빌색은 2004년 대선 당시 민주당 존 케리 대선후보의 유력한 러닝메이트로 물망에 올랐으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에게 막판 뒤집기를 허용했다.

주지사 임기를 마친 뒤 빌색은 2008년 대선의 민주당 후보경선 도전을 선언하고 인터넷 선거운동 등에 적극 나섰다.

그는 출사표를 던지면서 "나는 항상 `언더독'이었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으며,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해 왔다"고 입지전적인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며 대권에 대한 굳은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자금력 부족이라는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경선레이스에서 조기 낙마했다.

정치성향은 중도이며, 민주당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이라크전에는 반대하지만 즉각적이고 완전한 미군철군에는 유보적 입장을 취해왔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