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숨은규제 '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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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거(溝渠)가 뭔지 아세요?" 지난 5일 한 중소기업 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최근 본지가 연재를 끝낸 '까다로운 공장설립…'시리즈를 탐독했다고 소개한 뒤 자신이 경험한 '황당 사례'를 털어놨다.
그는 2년 전 화학공장을 세우기 위해 3300㎡가량의 임야를 샀다. 그런데 부지 한복판에서 국유재산인 구거가 발견되면서 일이 꼬였다. 구거란 폭 4~5m소형 하천.건축법상 침수 방지를 위해 건물을 3~6m 떨어뜨려 지어야 한다.
문제는 물 한방울도 흐르지 않는 데다 지적도에만 있는 폐구거인데도 이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공공시설용지에서 공장용지로 용도변경하지 않는다면 공장을 둘로 쪼개 지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국가를 상대로 8단계에 이르는 국유재산매수 절차를 밟았다. 여기에만 1년1개월이 소요됐다. 더구나 인근 공장 땅값을 기준으로 국유재산 가격이 매겨진 탓에 임야보다 훨씬 비싼 땅값을 부담해야 했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공장 규제의 폐해는 셀 수 없이 많다. 경기도에서 김치공장을 경영하는 C 사장은 맛이 좋다는 평가로 주문량이 늘어나자 폐수시설 확장을 시도했다. 그런데 수질오염총량제에 걸려 허가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지적도를 꼼꼼히 확인했거나 사업이 커지기 전 김치 분공장을 확보해뒀더라면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같은 규제 정보나 노하우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공장 설립이 가능한 전국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합정보망이 없는 데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무료컨설팅도 인력 및 예산이 부족한 탓에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승인된 3만415건의 공장 신ㆍ증설 사례 중 무료컨설팅을 받은 곳은 전체의 6%인 1838건에 불과했다. 반면 수백만~수천만원씩 하는 사설컨설팅은 연간 시장규모가 1조원이 넘을 정도로 '규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폐구거의 피해자인 사장은 "국가가 뭘 몰라서 당하는 피해나 막을 수 있도록 무료가이드나 제때 해줬으면 좋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관우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leebro2@hankyung.com
그는 2년 전 화학공장을 세우기 위해 3300㎡가량의 임야를 샀다. 그런데 부지 한복판에서 국유재산인 구거가 발견되면서 일이 꼬였다. 구거란 폭 4~5m소형 하천.건축법상 침수 방지를 위해 건물을 3~6m 떨어뜨려 지어야 한다.
문제는 물 한방울도 흐르지 않는 데다 지적도에만 있는 폐구거인데도 이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공공시설용지에서 공장용지로 용도변경하지 않는다면 공장을 둘로 쪼개 지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국가를 상대로 8단계에 이르는 국유재산매수 절차를 밟았다. 여기에만 1년1개월이 소요됐다. 더구나 인근 공장 땅값을 기준으로 국유재산 가격이 매겨진 탓에 임야보다 훨씬 비싼 땅값을 부담해야 했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공장 규제의 폐해는 셀 수 없이 많다. 경기도에서 김치공장을 경영하는 C 사장은 맛이 좋다는 평가로 주문량이 늘어나자 폐수시설 확장을 시도했다. 그런데 수질오염총량제에 걸려 허가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지적도를 꼼꼼히 확인했거나 사업이 커지기 전 김치 분공장을 확보해뒀더라면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같은 규제 정보나 노하우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공장 설립이 가능한 전국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합정보망이 없는 데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무료컨설팅도 인력 및 예산이 부족한 탓에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승인된 3만415건의 공장 신ㆍ증설 사례 중 무료컨설팅을 받은 곳은 전체의 6%인 1838건에 불과했다. 반면 수백만~수천만원씩 하는 사설컨설팅은 연간 시장규모가 1조원이 넘을 정도로 '규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폐구거의 피해자인 사장은 "국가가 뭘 몰라서 당하는 피해나 막을 수 있도록 무료가이드나 제때 해줬으면 좋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관우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