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20일 취임식을 50일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44대 대통령 당선인의 고민 중 하나는 엉뚱하게도 블랙베리다. 해킹 위험 등 국가안보 규정상 미 대통령은 개인통신을 할 수 없으나 그는 백악관에서 블랙베리를 사용하고 싶어 묘안을 찾고 있다. 이메일 송수신이 가능한 스마트폰 블랙베리는 오바마에겐 '보물 1호'다. 대선기간 중에도 언제,어디서나 블랙베리를 이용해 캠프 밖의 지인들로부터 허심탄회한 의견을 수렴했다.

오바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서 2대 유산을 물려받는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난과 이라크 전쟁ㆍ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이 그것이다. 그 돌파구의 일환이 블랙베리로 상징되는 '소통'이다. 그는 의회 내 싸움닭인 램 이매뉴얼 하원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하더니 막스 보커스 등 쟁쟁한 상원의원의 비서실장을 지낸 짐 메시나를 부실장으로 내정했다. 톰 대슐 전 상원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피터 라우스는 백악관 수석고문에 지명했다.

그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자신을 물고 뜯던 힐러리 클리턴 상원의원마저 국무장관으로 기용키로 한 대목은 무릎을 치게 한다. 의회의 협조 없이는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기 어려우며,정적까지 끌어안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회(ERAB) 신설은 재계 노동계 학계를 비롯 미 전역의 신선한 지혜를 구해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근 기자회견에서는 "대통령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겪는 일에서 격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맥박 위에 내 손을 계속 얹어놓고 싶다"며 소통의 중요성을 절절히 토로했다.

오바마의 소통 의지와 기법은 이명박 대통령과 무척이나 닮았다. 이 대통령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 약속한 대로 지난 3월 재계의 고충을 직접 듣는 핫라인(일명 '이명박폰')을 개설했다. 4월부터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인들에게도 개방했다. 또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새로 만들고 의회 창구로는 한나라당 중진인 김덕룡 전 의원을 국민통합특보에,박형준 전 의원을 청와대 홍보기획관에 기용했다. 정적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품는 방안도 다시 추진 중이다.

'오바마식' 소통이든 '이명박식' 소통이든 관건은 성과다. 제대로 된 소통은 국민들의 에너지를 결집해 분출시킨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두 손바닥이 맞아야 감동적인 박수소리가 난다.

하지만 '이명박폰'에 불이 난다는 소식은 여태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 안에 부자가 된다"는 이 대통령의 대국민 희망 심기 발언은 비판의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수도권 규제 완화,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 정책마다 야당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달 15일 워싱턴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이 대통령과 특파원들 간 간담회 자리였다. 기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뜻대로 되지 않아 대통령 노릇 못해 먹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느냐"고 돌발 질문을 던졌다. "평생 못해 먹겠다고 할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는 이 대통령은 "야당과 국민들을 끈질기게 설득하겠다"고 일축했다. 이 대통령의 소통 열정이 효과를 내 우리 경제를 벌떡 일으켜 세우길 기대한다.

워싱턴 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