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선고합니다. 그동안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고통에 대해 법원을 대신해 머리숙여 사죄드립니다. "

지난 25일 오후 2시30분 광주고법 301호 법정.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공안조작사건으로 꼽히는 '오송회 사건'에 대한 재심공판에서 재판장인 이한주 광주고법 형사1부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떠한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에 충실하겠다"며 "좌로도,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예기치 않은 재판부의 '반성문'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피해자와 방청객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김지하 시인의 '오적' 등을 낭송했다는 이유로 전북 군산제일고의 전ㆍ현직 교사 9명을 공안당국이 온갖 고문을 통해 간첩단으로 조작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에도 공안당국의 '한건주의'가 낳은 무리수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1심 재판부조차 3명에게만 실형을 선고하고 6명은 선고유예로 석방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2심에서는 달랐다. 9명 모두에게 1~7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권력상층부의 '진노'때문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억울함을 26년 만에 벗었으니 피해자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재판부의 사죄까지 들었으니 더욱 그렇다. 피해자인 조성용씨(71)는 "민주주의와 법의 존엄성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지난 24일 "외압을 행사하는 움직임에 온몸을 던져 바람막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가 검찰을 어떻게 평가할지 두렵다"고도 했다. 세종증권 관련 의혹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으로 확대되는 상황이어서 무게는 상당했다.

법원은 법치수호의 최후 보루다. 검찰은 최고 사정기관이다. 비단 공안사건이나 시국사건만이 아니다. 소소한 경제사건에서도 검찰과 법원의 잘못된 판단에 땅이 꺼져라 한숨짓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오송회 사건 재판부의 자기반성과 임 총장의 다짐을 계기로 다시는 반성문을 낭독하는 법관이나 검사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하영춘 사회부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