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정보 재충전…기업이 원하는 인재로

21세기 시장수요 채우는 교육기관

얼마 전 중국 현지 출판을 위해 베이징의 한 대학 출판사에 들렀다가 그 규모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면적이 5000평은 족히 될 것 같은 큰 건물이었다. 잘 조직된 것 같은 분야별 기획실,편집실이 끝이 없이 이어졌고 표지 디자인만 담당하는 조직도 여럿 됐다. 심지어는 중국 중앙방송(CCTV)의 텔레비전 스튜디오까지 갖추고 있는걸 보니 전 임직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우리네 직장 소속의 출판사와는 너무나 비교됐다.

안내를 받는 동안 언뜻 1970년대와 1980년대 우리 기업들이 '원료에서부터 제품에 이르는 일관생산체제'를 갖췄다며 '강점'을 강조하던 것이 떠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헨리 포드가 자동차의 부품과 작업공정을 표준화하고 운반 장치를 도입해 모든 생산과정을 일관적으로 재조직한 이래 20세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구가했으며 한때는 그것이 시대의 미덕처럼 칭송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 시장은 요즈음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기호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으며 특히 감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해지는 시장의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됐다. 소비자 중심의 다품종 소량생산이 시장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았으며 기업의 조직 원리도 일관성보다는 유연성에 기반을 두게 됐다.

그런데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경제사회요구 부합도가 전체 조사 대상 55개국 중 53위라고 발표했다. 이것이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경쟁국들보다 한참 뒤지는 31위로 평가된 주된 요인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대학들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국가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졸사원을 재교육하는 데 들이는 돈이 천문학적 금액에 이른다고 하지 않는가. 이는 무엇보다 대학교육의 체제와 커리큘럼이 경직화돼 수시로 변하는 기업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런데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정규대학의 엄격한 틀과 관료주의적 벽 바깥에 존재하는 교육기관들이 있다. 이른바 평생교육기관들이다. 지는 산업에서 뜨는 산업으로 갈아타려는 사람들이나 날로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재충전해서 직장에 살아남으려고 평생교육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다 뚜렷한 최근의 트렌드로는 고교 졸업 후 정규교육기관이 아닌 평생교육기관으로 바로 진학하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대학 부속교육기관들도 있지만 특화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독립적 교육기관도 많다. IT(정보기술) 디자인,패션 디자인,게임,영화,애니메이션 등의 문화콘텐츠 개발 및 IT 기술과의 융합 등 톡톡 튀는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다양한 커리큘럼이 이들에 의해 운영된다. 또한 세계 최고의 요리사나 세계최고의 팝 뮤지션이 되려는 학생들도 이곳에서 공부한다. 이들은 학교를 졸업하면서 학사학위 또는 전문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학력을 남달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인 만큼 정부가 이들을 위해 학점은행제라는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재학 중 병역연기가 되지 않으며 학자금 융자도 되지 않는다. 정규 대학뿐 아니라 사이버대학과 방송통신대학 재학생에게 모두 주어지는 제도가 이들에게만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히 헌법의 평등권 위반이다. 그나마 올해 설립된 평생교육진흥원을 중심으로 이 같은 민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니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