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허정무(53)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을 끝으로 올해 A매치를 모두 마쳤다.

최종예선 B조 성적은 2승1무로 이란(1승2무)를 제치고 선두를 달려 조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 확보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지난 1989년 10월25일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사우디를 2-0으로 이긴 뒤 19년간 이어졌던 `사우디전 무승 징크스'를 깨면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지난 2000년 11월 아시안컵 직후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났던 허정무 감독은 거스 히딩크-움베르투 쿠엘류-조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벡 등 외국인 감독 시대를 마감하고 지휘봉을 다시 가져왔지만 취임 후 1년여 여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첫 A매치였던 지난 1월 칠레와 평가전에서 0-1 패배로 첫 단추를 잘 끼우지 못했다.

그러나 월드컵 3차 예선 개막전이었던 투르크메니스탄전 4-0 완승에 이어 올해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1승2무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월드컵 3차 예선에서 북한과 2차전 0-0, 요르단과 3차전 2-2로 각각 비겨 동아시아선수권대회부터 네 경기 연속 무승부로 `허무 축구' 꼬리표가 달렸다.

설상가상으로 아시안컵 음주사건으로 대표팀 1년 자격정지 징계가 풀리지 않은 골키퍼 이운재(수원)의 `사면설' 카드를 꺼냈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뜻을 접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6월 요르단-투르크메니스탄과 원정에서 잇따라 승전보를 전한 허정무호는 안방에서 치러진 3차 예선 최종전에서 북한과 0-0으로 비겨 3차 예선 3조에서 3승3무를 기록, 동률인 북한을 골득실(한국 +7, 북한 +4)차로 제치고 조 1위로 최종예선에 올랐다.

최종예선 출발도 좋지 않았다.

북한이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 불가' 입장을 내세워 두 번째로 중국 상하이에서 치른 최종예선 개막전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허정무호 출범 후 북한전 네 경기 연속 무승부였다.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재와 수비 불안이 도마 위에 올랐고 일각에서는 `허정무 카드로는 월드컵 본선행이 어렵다'는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이근호(대구), 이청용, 기성용(이상 서울)과 해외파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도르트문트) 등 신구 세대와 국내-해외파가 조화를 이룬 제7기와 8기 허정무호는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 3-0과 지난달 15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 4-1 완승으로 항간의 감독 경질설을 잠재웠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진출의 첫 고비인 중동 원정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 16일 카타르와 평가전에서 국내파 20명을 골고루 기용해 전력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러나 19년 무승 한(恨)을 안긴 `천적' 사우디와 일전에서는 기분 좋은 2-0 승리를 낚았다.

허정무 감독은 사우디전까지 16차례 A매치(현재 8승7무1패)에서 51명을 기용하고 이중 21명을 데뷔시키는 허정무식 급격한 세대교체는 무모한 `실험'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UAE전 대승을 계기로 다소 불식됐다.

또 스리톱을 내세운 4-3-3 전형을 시험했던 허 감독은 이근호-정성훈(부산)이 투톱 콤비를 앞세운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백 수비라인은 중앙 수비수인 강민수(전북)와 조용형(제주)이 허 감독의 신임을 받는 가운데 왼쪽을 책임졌던 김동진(제니트)이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김치우(서울)-이영표, 이영표-오범석 조합을 번갈아 실험했다.

또 박지성과 이청용이 좌우 날개를 포진한 가운데 노련한 김정우(성남)와 기성용이 중앙미드필더진에서 호흡을 맞췄다.

골키퍼는 정성룡(성남)이 허정무호에서 줄곧 골문을 지켜오다 아시안컵 음주사건 징계에서 풀린 `거미손' 이운재(수원)가 대표팀에 복귀하면서 이운재가 주전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닻을 올린 뒤 1년여 순풍과 역풍을 모두 경험하며 월드컵 예선의 바다를 항해했던 허정무호가 내년 2월11일 이란과 원정을 시작으로 재개되는 최종예선 레이스에서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꿈을 이뤄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리야드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