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부실자산 매입은 포기 … 카드ㆍ車할부사 등에 직접 자금지원

미국 정부가 총 7000억달러에 이르는 금융권 구제금융의 방향을 틀었다. 은행권에서 부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등 부실 자산을 사들이는 대신 신용카드,자동차할부,학자금대출 등 비은행권의 소비자금융 부문에 공적자금을 집중 투입키로 했다. 신용카드나 자동차할부 부실이 갈수록 커져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소비자금융을 정상화해야 소비도 늘어나고 경기 장기 침체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12일 "역경매로 부실 모기지 자산 등을 매입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닌 것으로 결정내렸다"며 부실 자산 매입 계획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역경매 방식은 자산 매입가격 산정이 까다롭고 기간이 오래 걸리는 등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데다 효과마저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자금 직투입을 통한 은행권 부분 국유화의 효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는 것도 방향 전환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특히 "미국 소비자 신용 부문의 약 40%를 차지하는 신용카드,자동차할부,학자금대출 등의 비은행권 금융 기능이 유동성 부족으로 거의 정지된 상태"라며 소비자금융 부문을 활성화하는 데 구제금융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계의 소비지출과 직결된 소비자금융의 기반마저 붕괴되면 경기침체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3일 발효된 법에 의해 총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가운데 1차분 2500억달러에서 절반인 1250억달러를 씨티그룹(250억달러),JP모건(250억달러),웰스파고(250억달러),뱅크오브아메리카(BOAㆍ250억달러),골드만삭스(100억달러) 등 9개 주요 상업 및 투자은행에 투입했다. 또 현재 43개 중소형 은행이 47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받은 상태며,나머지 780억달러는 14일까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은행권에 지원할 예정이다.

소비자금융 지원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최근 의회에 추가 요청한 1000억달러를 일단 활용한다. 이 중 400억달러는 미 최대 보험사인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에 지원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카드업계에선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가 35억달러를 승인받았다. 캐피털원파이낸셜도 35억5000만달러를 예비 승인받았다. 미 재무부는 앞으로 의회 승인을 받아 사용할 수 있는 나머지 3500억달러도 소비자금융 지원에 사용할 방침이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와 별도로 소비금융사인 GE캐피털 채무 1390억달러도 보증해주기로 했다.

폴슨 장관은 "전체 구제금융 7000억달러가 현재로선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너럴모터스(GM) 등 파산 위기에 직면한 자동차업계 지원과 관련해선 "어떤 지원이든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과 미 민주당은 정부가 구제금융을 활용해 자동차업계를 지원하는 입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