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경제 살리자 만들었다 '천덕꾸러기'로

경기 자극용은 곤란…수요있는 곳에 집중

연말만 되면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마다 혀를 차며 한마디씩 하곤 했다. 자기 돈 아니니까 저렇게 함부로 쓴다고.시민들의 그런 질타는 마땅하다. 개인이든 정부든 아껴야 잘살 수 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다행히 예산당국과 국토해양부가 나서서 2006년부터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하니 잘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의 각도를 조금만 돌리면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보도블록을 만드느라고 공장이 돌아갔을 것이고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월급을 받아 생활을 꾸렸을 것이다. 또 교체공사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이 일당을 받았을 것이다. 보도블록을 자꾸 바꾸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질 테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블록을 자주 교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어느 쪽 말이 맞을까. 물론 절약해야 잘산다는 앞의 말이 맞다. 만약 지방자치단체들이 매일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하는 일에 매달린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보도블록 제조와 공사로 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풍요가 아니라 가난에 이르는 길이다. 보도블록을 만드느라고 정작 필요한 다른 것의 생산이 줄어 그만큼 세상은 궁핍해진다.

그런데 요즈음 같은 불황기에는 후자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곤 한다. 너도나도 돈을 안 써 불황이 심화되니까 정부라도 돈을 풀어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도 예산을 늘려서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많이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경기 자극 목적의 SOC 투자는 자칫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 공사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지난 정부들의 경험이 그렇다. 지방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공항이라는 SOC 투자를 택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예천공항은 아예 문을 닫았고,새로 지은 울진공항은 취항할 항공사가 없어서 처음부터 비행훈련시설로 이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공항으로 문을 열어 놓은 양양공항,무안공항 역시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이런 지방공항들도 공사 과정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했을 것이다. 건설회사도 돈을 벌고,근로자들도 거기서 일자리를 얻었을 것이다. 거기서 돈이 풀려 근처의 식당과 가게들도 흥청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SOC 투자를 하자는 것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자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당장은 흥청거릴 수 있지만 그런 투자를 반복하다 보면 나라 살림 거덜내는 것은 시간 문제다.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공급을 늘리고 이자를 낮추는 등 유동성을 푸는 일은 필요하다. 은행들이 너도나도 돈을 회수하다 보니 시중에 돈이 안 돌고 멀쩡하던 기업들도 넘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를 자극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지방공항 투자의 전철을 밟기 십상이다.

경기 자극이 목적이라면 SOC 투자보다 주민들에게 직접 돈이나 상품권을 지급해 주는 것이 더 낫다. 그 돈으로 각자 필요한 것을 사서 쓸 것이고,그것을 만드는 공장에는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감세를 통해 민간에 더 많은 돈을 남겨 주는 것도 좋은 경기 자극책이 될 수 있다. 그런 방법들은 최소한 지방공항 같은 골칫덩어리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물론 SOC 투자는 필요하다. 하지만 경기 자극의 수단이면 곤란하다.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SOC 공급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막히는 곳의 길을 넓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닐 만한 곳에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SOC 투자를 하다 보면 그런 원칙은 무시되기 쉽다. 불황기의 SOC 투자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는 지켜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