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팔짱만 끼고 앉아 있었습니다. 달러를 사지도,팔지도 못하니 시황만 지켜보고 있는 거죠."

한 시중은행의 외환딜러 A씨는 22일 "거래 주체가 실종돼 외환시장의 거래량이 줄어들고 이 때문에 환율이 더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시중은행의 달러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와 한국은행의 대책으로 은행들의 외화 자금난은 어느 정도 풀렸지만 환율의 불안정성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의 달러 경쟁입찰 등 외환시장 이외의 경로를 통해 은행들이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외환시장의 거래량을 줄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들은 이날 달러 거래를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일 평균 80억달러를 넘던 서울 외환시장의 거래량은 이달 들어 45억5000만달러로 줄었고,이날은 32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원ㆍ달러 환율의 변동 폭은 지난 8월 6원90전에서 9월 24원70전,10월(1~22일 기준) 68원70전으로 벌어지는 등 불안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김성순 기업은행 차장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투기적 거래가 줄어 이미 서울 외환시장은 전체의 20%에 불과한 실수요자들만 남은 상황"이라며 "은행에 달러를 공급하는 정부 대책은 외환시장의 '사자'심리를 해소할 뿐 환율의 오름세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거래 자체가 이처럼 줄다 보니 서울 외환시장은 국내 주식을 팔고 나가는 외국인들의 달러 매수와 역외 선물환(NDF)시장의 움직임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9원90전 급등한 136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전날 밤 NDF 시장의 원ㆍ달러 1개월물 환율이 58원 급등한 1365원에 거래를 마친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 외국인은 이날 국내 주식시장에서 약 3600억원을 순매도하며 달러 매수세를 촉발했다. 결국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42원90전 오른 1363원에 거래가 마감됐다.

정부가 매일 은행 간 외환 거래 내역을 점검하고 투신권의 달러 환매수를 장외매매로 유도하면서 외환시장의 거래량은 더욱 급감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일일 거래 내역이 다 드러나는 상황에서 누가 달러를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진우 NH선물 금융공학실장은 "거래량이 적다 보니 약간의 매매 주문만으로도 환율이 급등락하고 있다"며 "주식시장의 급락세가 진정돼 외국인의 달러 매수가 줄어들고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등 수급이 확실하게 안정될 때까지는 환율이 떨어지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