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시작,대기업 총수가 됐던 사람의 말을 기억한다. "살면서 속 시원한 것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가을 뒤엔 겨울이 옵니다. 뭔가 잘못됐다거나 분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에 한바탕 맞붙고 나면 속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곧 추워지기 쉽습니다. 울화가 치밀수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세요. "

2시간에 걸친 강연 내용 중 유독 이 대목이 잊혀지지 않는 건 홧김에 내뱉은 말이나 저지른 일 때문에 혼난 적이 많았던 까닭이다. 부모와 직장상사 등 윗사람에게 대들거나 따진 다음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나 아랫사람을 야단친 뒤에도 뒷감당을 못해 쩔쩔맨 적이 수두룩했다.

치솟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앞뒤 분별없이 처신하고 나면 수습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말로 사과하고 끝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밥과 술을 사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도 결국 상대의 기분을 풀지 못해 두고두고 껄끄러워지는 일도 다반사다. 깊은 밤 취중에 쓰는 편지도 그런 화근(禍根)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자꾸 딴지를 거는 팀장을 향해 '도대체 왜 그러느냐,무슨 억하심정이냐'며 퍼붓거나 옛애인에게 '예전에 너랑 내가 어떤 사이였는데' 식으로 할말 못할말을 늘어놓는 게 그것이다. 종이편지야 아침에 읽어본 뒤 너무 유치하거나 과격하면 민망해하며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메일이면 사정은 달라진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면 끝이다. 술 깬 뒤 땅을 치고 후회해봐야 때는 늦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구글에서 '고글 메일'이란 걸 개발했다는 소식이다. 밤 10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이메일을 보내려면 1분간 5개의 산수 문제를 풀도록 했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띄우려는 메일이 과연 말짱한 정신의 산물인지 혹시 고글(색안경)의 소산은 아닌지 검증하는 셈이다. 취중이 아니라도 '욱'하는 상태에서 행동하다 보면 실수하기 십상이다. 신경이 곤두선다 싶으면 일단 자리를 옮기거나 구구단을 외워서라도 마음을 가라앉힐 일이다. 화풀이는 잠깐이요,뒷감당은 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