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떨때 탐욕 부려야…기다리다간 봄날 지나갈 것"
"경기침체 좀더 지켜봐야" 지적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여파로 극심한 혼조세를 보이던 뉴욕 증시가 지난주 주간 기준으로 오랜만에 4.6% 올라 시장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17일엔 주택 시장과 소비자 심리 등 최악의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주식투자 적기론'에 힘입어 다우지수는 127.04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아직은 투자심리가 취약해 변동성이 큰 불안한 장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장기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버핏 회장은 17일 '미국을 사라,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Buy American.I am)'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주식을 사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탐욕을 부릴 때 두려워하고,다른 사람들이 공포에 떨 때 탐욕을 부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업률이 늘고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등 단기적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경제가 회복되면 시장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레버리지(차입)가 많거나 경쟁력이 취약한 기업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지만,미국의 다수 건전한 기업들의 장기 전망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버핏 회장은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최악의 상황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을 때 주식을 사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공황기인 1932년 7월8일 41에 불과하던 다우지수는 1933년 3월까지 30% 상승했다고 소개했다. 그 사이 경제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지만 주가는 올랐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에도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가 바로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로빈(개똥지빠귀)을 기다리다간 봄날이 지나가 버릴 것(If you wait for the robins,spring will be over)"이라고 했다. 앞으로 10년을 보자면 거의 확실하게 주식이 현금보다 훨씬 큰 폭으로 '아웃퍼폼(초과수익)'할 것이며,"퍽(공)이 있던 곳이 아니라 퍽이 가는 곳으로 스케이팅한다"고 말한 위대한 아이스 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명언을 떠올리라고 덧붙였다.

버핏 회장이 공개적으로 주식 매입을 권고,얼어붙은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이날 다우지수는 부진한 경기지표에도 불구하고 한때 300포인트 급등하기도 했다. 비록 막판 매물 압박으로 하락세로 장을 마감했지만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는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들이 버핏 회장의 '주식 투자 적기론'에 반응한 것은 저가 주식 매수 수요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메릴린치의 한 자산운용 담당자는 "거액 자산가 중 주가가 빠질 때마다 주식을 매수하려는 이들이 최근 들어 늘고 있다"며 "낙폭이 커질 때마다 저가 매수세 유입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크지만 단기 자금시장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점도 증시에는 호재다. 끊기다시피 했던 은행 간 대출이 살아나 이날 하루짜리(오버나이트) 리보(런던은행 간 금리)는 0.27%포인트 하락한 연 1.67%를 기록했다. 일주일 전 하루짜리 리보는 5.09%에 달했다. 아직은 기업과 개인들한테 자금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직접 기업어음(CP) 매입에 나설 경우 기업들의 자금 흐름에도 숨통이 터질 전망이다. 여기에 구글과 일부 제약업체의 실적 호전 등도 장 분위기를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또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에 응하기 위해 대규모로 주식을 팔아 현금화할 수밖에 없었던 헤지펀드들의 매도세도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물론 버핏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해소시켜 투자자들의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아주기에는 아직 무리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스티븐 리추이토 미즈호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경기침체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며 "경기침체는 상상의 나래를 펴 중단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9월의 미 주택 착공 실적은 전달에 비해 6.3% 급감한 81만7000채로 17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였으며,10월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는 전월의 70.3에서 57.5로 추락해 월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