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가을, 오는 듯 가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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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며 나는 내닫던 걸음을 우뚝 세우고 말았다. 꽃집에서 내놓은 노란 국화 화분 때문이었다. 노랗게 핀 국화 꽃잎 위로 파리하고 차가운 햇볕이 내리고 있었다. 회사원들이 나처럼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잠시 잠깐씩 국화 화분에 눈길을 주거나 국화꽃잎을 만지작거리다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슬이 서리로 변하기 시작하는 한로(寒露)가 벌써 지났다. 한로 무렵에는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는 날아가고 기러기가 날아들기 시작한다고 했다. 국화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 반죽하고 단자를 만들어 먹는 때도 이즈음이라고 했다.
가을 제일의 꽃은 국화가 아닌가 싶다. 퇴계 이황은 "누런 국화 줄로 피어 정원마다 가을이네(黃菊排金院院秋)"라고 읊었고, 당나라 시인 한유는 "주머니 속에 누런 금색의 조가 늘어서 있다"라고 써 국화를 예찬했다. 소설가 이태준은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가을꽃은 피고진다면서, 사군자의 하나인 국화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적었다. "국화를 위해서는 가을밤도 길지 못하다. 꽃이 이울기를 못 기다려 물이 언다. 윗목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으면 방안은 더욱 향기롭고 품지는 못하되 꽃과 더불어 누울 수 있는 것, 가을밤의 호사다. 나와 국화뿐이려니 하면, 귀뚜리란 놈이 화분에 묻어 들어왔다가 울어대는 것도 싫지는 않다. "
사무실로 돌아와서 구절초 꽃차를 선물 받았다. 그이는 공주 영평사를 다녀왔노라 했다. 들국화의 일종인 구절초가 만개해 마치 흰눈이 소복이 내린 듯했다고 감회를 일러 주었다. 물을 끓여서 구절초 꽃차를 나눠 마셨다. 가을정취가 찻잔에 가득했다.
찻잔을 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근래 며칠은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하며 보냈다. 바깥으로부터 온 충격이 컸다. 연일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은 헝클어진 덩굴 같아졌다. 두들겨 맞기만 하는 권투선수처럼 되어 버렸다. 내 곁으로 가을이 바짝 붙어선 줄도 모르고 말이다. 가을의 큰 공간속에서 억새가 은빛으로 출렁이는 줄도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바깥에 위기가 있으면 그 위기는 우리 내부로도 전염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숨쉴 수 없이 고통스런 방에 자신을 홀로 남겨두는 경우가 잦다. 이렇게 해서는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가을에 우리는 얻으면서 잃는다. 가을은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주지만, 시들어 떨어지는 슬픔도 함께 안겨준다. 마치 냉탕과 온탕이 함께 있는 대중목욕탕처럼. 마치 손등이기도 하면서 손바닥이기도 한 당신의 손처럼. 이러할 진대 우리는 우리에게 작용하는 상반된 힘을 잘 이해해야 한다. 바람이 멎을 때 우리는 떨어지는 꽃을 잘 볼 수 있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있을 때 우리는 산의 고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가을이 지닌 두 가지 상반된 성질 또한 맞대어 비교하고 차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기쁨이 슬픔에게 기대며 가고 슬픔이 기쁨에게 기대며 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인정이야말로 우리가 가을에 해야 할 사색의 내용이다.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노래가 있다. 고은 시인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여 가수 최양숙, 이동원이 부른 '가을 편지'라는 노래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오늘 한번쯤은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흥얼흥얼하면서 작은 낭만으로 느슨하고 게으르게 가을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더 외롭고 더 어려운 사람에게로 가서 그이가 사랑하는 '그대'가 되어도 좋겠다. 가을을 느끼며 사는 일이 큰 사치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부디 가을을 타며 살라고 말하고 싶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며 나는 내닫던 걸음을 우뚝 세우고 말았다. 꽃집에서 내놓은 노란 국화 화분 때문이었다. 노랗게 핀 국화 꽃잎 위로 파리하고 차가운 햇볕이 내리고 있었다. 회사원들이 나처럼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잠시 잠깐씩 국화 화분에 눈길을 주거나 국화꽃잎을 만지작거리다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슬이 서리로 변하기 시작하는 한로(寒露)가 벌써 지났다. 한로 무렵에는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는 날아가고 기러기가 날아들기 시작한다고 했다. 국화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 반죽하고 단자를 만들어 먹는 때도 이즈음이라고 했다.
가을 제일의 꽃은 국화가 아닌가 싶다. 퇴계 이황은 "누런 국화 줄로 피어 정원마다 가을이네(黃菊排金院院秋)"라고 읊었고, 당나라 시인 한유는 "주머니 속에 누런 금색의 조가 늘어서 있다"라고 써 국화를 예찬했다. 소설가 이태준은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가을꽃은 피고진다면서, 사군자의 하나인 국화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적었다. "국화를 위해서는 가을밤도 길지 못하다. 꽃이 이울기를 못 기다려 물이 언다. 윗목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으면 방안은 더욱 향기롭고 품지는 못하되 꽃과 더불어 누울 수 있는 것, 가을밤의 호사다. 나와 국화뿐이려니 하면, 귀뚜리란 놈이 화분에 묻어 들어왔다가 울어대는 것도 싫지는 않다. "
사무실로 돌아와서 구절초 꽃차를 선물 받았다. 그이는 공주 영평사를 다녀왔노라 했다. 들국화의 일종인 구절초가 만개해 마치 흰눈이 소복이 내린 듯했다고 감회를 일러 주었다. 물을 끓여서 구절초 꽃차를 나눠 마셨다. 가을정취가 찻잔에 가득했다.
찻잔을 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근래 며칠은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하며 보냈다. 바깥으로부터 온 충격이 컸다. 연일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은 헝클어진 덩굴 같아졌다. 두들겨 맞기만 하는 권투선수처럼 되어 버렸다. 내 곁으로 가을이 바짝 붙어선 줄도 모르고 말이다. 가을의 큰 공간속에서 억새가 은빛으로 출렁이는 줄도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바깥에 위기가 있으면 그 위기는 우리 내부로도 전염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숨쉴 수 없이 고통스런 방에 자신을 홀로 남겨두는 경우가 잦다. 이렇게 해서는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가을에 우리는 얻으면서 잃는다. 가을은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주지만, 시들어 떨어지는 슬픔도 함께 안겨준다. 마치 냉탕과 온탕이 함께 있는 대중목욕탕처럼. 마치 손등이기도 하면서 손바닥이기도 한 당신의 손처럼. 이러할 진대 우리는 우리에게 작용하는 상반된 힘을 잘 이해해야 한다. 바람이 멎을 때 우리는 떨어지는 꽃을 잘 볼 수 있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있을 때 우리는 산의 고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가을이 지닌 두 가지 상반된 성질 또한 맞대어 비교하고 차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기쁨이 슬픔에게 기대며 가고 슬픔이 기쁨에게 기대며 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인정이야말로 우리가 가을에 해야 할 사색의 내용이다.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노래가 있다. 고은 시인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여 가수 최양숙, 이동원이 부른 '가을 편지'라는 노래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오늘 한번쯤은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흥얼흥얼하면서 작은 낭만으로 느슨하고 게으르게 가을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더 외롭고 더 어려운 사람에게로 가서 그이가 사랑하는 '그대'가 되어도 좋겠다. 가을을 느끼며 사는 일이 큰 사치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부디 가을을 타며 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