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천300원을 넘어서자 환 헤지 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 손실에 망연자실한 상태다.

지난해 말 환율이 900원대 초반으로 내려앉자 환 손실을 줄이고자 중소기업들이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하면서 설정한 '녹인(knock in) 환율'은 대개 950~970원이었다.

키코는 환율이 녹인을 넘어서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환헤지 효과를 얻거나 최소한 손실을 보지 않지만 환율이 올해 초부터 1천원대를 돌파하며 오르기 시작해 이날 1천300원을 뛰어넘자 키코로 인한 환손실이 기업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확대됐다.

키코는 환율이 녹인 수준을 넘을 경우 계약금액의 2~3배를 은행에 상환해야 하는 구조로 돼 있어 환율이 950~970원에서 더 오르면 오를수록 손실액은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해 소송을 준비 중인 중소기업 134개사의 손실액은 환율이 1천원일 때 3천228억원이었으나 8월 말 현재 환율 1천200원 기준으로 피해액이 1조123억원으로 늘어났다.

또한 최근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12개사를 포함해 146개사의 손실액을 환율 1천300원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보니 손실액이 1조4천385억원으로 더 늘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나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해왔던 기업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매출액 6천억원대의 중견기업인 태산엘시디가 키코 직격탄에 맞아 흑자도산을 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8월말 기준으로 키코 가입업체 중 22개사가 2천억원을 미결제해 도산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갑작스러운 환율 상승에 당황한 중소기업들이 환 손실을 만회하려고 키코 상품을 재설계해 들거나 또 다른 파생상품에 가입하는 이른바 '물타기'를 했다가 오히려 손실을 키우기도 했다.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 대표는 "이제는 환율이 얼마나 더 오를지 혹은 언제쯤 안정을 되찾을지 예상하는 하는 것조차 포기했다"며 "더는 손 쓸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키코 피해는 이 상품에 가입한 기업들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 102개사와 수위탁 거래관계에 있는 기업체 수는 모두 8천968개사로, 기업당 평균 88개사꼴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 위탁기업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 수탁기업도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환 헤지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은 현재 '환 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법적 다툼을 통해 손실을 보전받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최근 국책자금과 보증 등 모두 8조3천억원의 유동성을 공급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 주겠다고 밝혔지만 중소기업들은 정부안의 실효성에 회의적이다.

자금지원이 우량 중소기업에 집중될 소지가 있으며 정부가 내놓은 인센티브 정도로는 은행들이 유동성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대위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자금을 활용해 키코 손실 기업에 저리로 장기대출을 해주고 키코 손실액을 신용평가 항목에서 제외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중소기업들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