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구조조정의 개념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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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수석 논설위원ㆍpsh77@hankyung.com >
이렇게 배웠다. 정직하고 착해야 한다. 근면성실하고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 올려다 보지 말고 내려다 보며 살아야 한다. '콩쥐팥쥐''신데렐라'같은 동화를 통해 남을 괴롭히고 탐욕스럽게 굴면 천벌 받는 줄 알았다. 습관과 관행 근절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유신과 말(馬)' 얘기도 귀에 못 박히게 들었다.
다들 세상은 공평하고 노력만큼 보상받는다고 믿었다. 회사와 나라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 생각,야근도 월화수목금금금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민소득이 늘고 나라가 부강해지면 새 세상이 열릴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가난했으되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더 가난한 이를 살피는 인정도 있었다.
그렇게 1980년대를 보내고 9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열에 일곱 집이 자가용을 굴리는 지금,사람들 마음은 넉넉해지긴커녕 삭막하기 짝이 없다. 월급 100만원 미만 비정규직이 수두룩한데 몇몇 부자들은 더 갖겠다며 불법과 편법을 일삼고,일부에선 그들보다 몇 배 더 받으면서도 어림없다며 파업한다.
권력자들의 꾹돈 수수 또한 끊이지 않는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금전만능주의가 젊은층까지 지배한다. 4년제 대학 졸업자가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고교 이과생 한 반 35명 중 33명이 의대를 지망한다. 적성이나 사명감과는 무관하다. 대부분 그저 돈 잘 벌고 잘릴 걱정 없다는 이유다.
어쩌다 이처럼 됐는지 알 길 없다. 확실한 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복 받는다는 가치관이 무너지고 거기엔 외환위기 이후 구조 조정에 대한 불안이 한 몫 했다는 점이다. 이구백이라는 판에 겨우 취직해도 38세면 눈치봐야 하고 45세 고비를 넘겨도 55세면 관둬야 하니 애당초 살 길을 찾는다는 식이다.
'인생 이모작' 운운 하지만 툭하면 야근하느라 녹초가 되는데 자기 계발은 언제 하며 우리 사회에 나이 들어 시작할 일이 있을 만큼 직업 유동성이 있느냐는 반문이다. 결국 구조조정이 조직 합리화라는 긍정적 효과보다 철밥통을 찾거나 일보다 다른 데 눈돌리는 부정적 결과를 유발했다는 얘기다.
가치관 붕괴 요인은 또 있다.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구호에도 불구,연줄 찾아 헤매지 않고 제 일만 한 사람은 뒤로 밀리고,일은 대강 하고 줄 서는데 혈안이던 인물이 앞서가는 건 물론 심지어 능력 부족이나 말썽으로 그만 뒀던 인물이 정치권을 기웃거리다 임원으로 부임하는 일 등이 생겨난 게 그것이다.
세상 바뀌면 뭔가 달라질까 기대했더니 중심세력만 바뀌었지 변하는 게 없다는 것도 열심히 정직하게 일한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게 아니니 챙길 수 있을 때 챙겨야 한다는 식의 풍조를 만연시켰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된다. 의식과 가치관을 바로잡지 않는 한 세상 그 어떤 개혁과 혁신도 불가능하다.
일단 구조조정의 개념부터 바꿔볼 필요가 있다. 조직 논리를 앞세워 편의에 따라 사람을 잘라내는 게 아닌 구성원의 의식과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그것이다. 세상 모든 죄악은 불안과 초조에서 비롯된다고 하거니와 구성원들 사이에 '힘 없으면 잘린다'는 생각이 존속되는 한 구조조정의 의미와 효과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성실함이 미련함으로,올곧음이 융통성 없음으로 간주된 거야 셰익스피어 시대부터라 해도 그 미련하고 융통성 없는 이들 덕에 이 나라가 이만큼 유지 발전돼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수치스러운 건 잠깐이요,이득은 영원하다'는 식의 처세술이 판치는 세상의 미래는 없다. '인테그리티'로 요약되는 정직과 근면성실,선량함과 도덕성의 가치 회복이야말로 MB정부가 남은 기간 내내 추구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