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 고려대 교수ㆍ경영학 >

최근 노사분규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파업 건수는 줄고 있지만 파업 지속일수와 근로손실일수가 늘어나고 장기파업이 증가하고 있다. 1989년 최고점을 기록하던 파업건수는 지속적으로 줄어 1997년 최저점을 기록했고,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의 와중에 파업이 증가했으나 2005년부터는 다시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파업건수와는 달리 파업지속일수와 근로손실일수가 계속 길어지는 기현상을 보인다. 1989년에는 평균 파업지속일수가 5~6일 정도에 불과했으나,이후 매년 늘어나 지난해에는 55일에 이르렀다. 최근 장기파업 사업장도 증가하고 있다. 234일을 끌고 타결된 알리안츠생명,434일 만에 노사가 합의한 뉴코아,몇 년째 분규가 지속되는 기륭전자,KTX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업의 장기화 현상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1989년에는 전체 파업의 70~80%가 임금이 원인으로 단기파업이 많았지만,외환위기 이후 고용문제,구조조정 등 단체협상이 전체 파업원인의 절반을 넘기면서 파업의 장기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의 장기파업은 대부분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파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알리안츠생명의 파업은 관리직에 해당하는 지점장이 주축이 됐고 뉴코아와 기륭전자,KTX 승무원의 파업은 모두 비정규직 고용문제가 도화선이 된 사례다. 정규직 생산사원을 중심으로 한 파업이 지난 수십년간 파업의 주된 양상이었으므로 비정규직과 관리직의 파업에는 노ㆍ사ㆍ정 모두 대응이 미숙하고 해결모델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타결도 더디다.

장기파업은 노사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 기업 간 경쟁이 극한상황에 이르면서 기업은 노사분규에 더욱 취약해졌다. 장기파업이 끝나기 전에 소비자들은 경쟁기업으로 옮겨간다. 자동차산업에선 부품공장 한 곳의 파업이 수십개 조립공장 라인을 중단시킨다. 근로자들에게도 장기파업은 치명적이다. 파업이 몇 달을 넘기면 당장 생계가 급한 근로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나서서 파업대오는 쉽게 무너지고 협상력은 약해진다. 234일을 끌고 타결된 알리안츠생명,434일 만에 타결된 뉴코아 노사분규 모두 장기간을 끌었지만 근로자의 의견이 거의 관철되지 않은 것은 장기파업의 결과가 근로자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파업의 악성화와 장기화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먼저 자율해결의 원칙이 중요하다. 장기파업에 대해 정치인이나 시민단체가 중재를 한답시고 해결방안을 몇 마디 거들게 되면 파업근로자들의 기대수준만을 높여서 타결이 더욱 어려워진다. 파업은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노사 간 자율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효과적이다. 또한 법과 원칙의 철저한 준수가 필요하다. 노사가 모두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있어야 자율타결을 할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사용자가 파업 중 임금을 지급하는 관행은 목전의 파업을 빨리 끝내는 효과는 있겠지만 노동자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없으므로 향후 파업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2000년 이후 대기업 정규직의 파업은 감소하고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파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 노사관계의 최전선은 대기업ㆍ정규직에서 중소기업ㆍ비정규직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무관리직 사원들도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을 느껴 노동조합에 관심을 보이고 노사분규도 일어난다. 2010년부터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비정규직과 사무관리직의 노조활동 증가가 예상된다.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사무관리직의 노사관계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방안이 시급하다. 기업은 새로운 유형의 노사관계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일찍 수립하는 예방형 노사관계 관리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