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위기가 글로벌 이머징 마켓, 즉 신흥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월스트리트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올들어 주가가 33% 폭락한 신흥시장에 대해 "여전히 매력적인 곳으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낙관론과 "투자 리스크가 커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는 것.
국제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최근 연매출 1억달러 이상의 신흥시장 경영자 1천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87%가 향후 2년간 매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반면 비관적 전망은 3%에 그쳤다고 24일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회사 수익성에 대한 낙관적 견해도 10명 중 8명꼴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 세계경제리서치 수석인 짐 오닐은 23일 런던에서 열린 신흥시장 콘퍼런스에서 "금융위기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 상황을 더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제한 뒤 미국 경제가 더 이상 과거처럼 지배적 위치에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세계경제의 미래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BRICs) 시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특히 브릭스 4개국 가운데 나머지 3개국 시장을 합한 규모와 맞먹는 중국이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오닐의 전망이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도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이 세계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서 미국에 대한 전반적인 의존을 완화해줄 것이라며 미국의 경기 하강이 이전 사이클보다 덜 심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P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베스 보비노는 "미국 경기가 후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선진국과 신흥시장은 느린 페이스이지만 계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세계적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델 컴퓨터가 이머징 마켓을 회사 성장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은 것도 이런 전망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24일 "금융위기의 '메인 드라마'가 뉴욕과 런던에서 펼쳐지는 동안 신흥시장은 그 파급효과로 인해 더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런던의 컨설팅 업체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아시아 신흥시장 담당 마크 윌리엄스 애널리스트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신흥시장의 경우 세계경제가 곤란에 빠질 때보다 더한 고통을 받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신흥시장의 경우 금융위기를 맞아 리스크 회피를 위해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자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고 이는 무역 역조와 경기하강, 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인도만 놓고 봐도 최근 자본유출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 심화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는 특히 내수가 활발한 인도, 중국과 달리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흥시장에 투자된 총 1천110억달러 규모의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상환이 내년에 이뤄진다는 점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1997년 아시아 시장을 강타한 외환위기 때 같은 상황의 도래를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지만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국가 채무불이행 사태 발생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