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상실이 문제..장기화 전망..부동산이 관건

국제 금융시장의 위기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위기에 몰린 AIG에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해 살리기에 나섰지만 17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 증시가 급락하고 은행간 금리는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의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AIG의 구체책에 구제책이 16일 발표된 직후만 해도 이것이 금융시장 진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었지만 하루 만에 시장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파산보호 신청을 한 리먼브러더스의 다음 타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고 은행들은 서로 돈을 빌려주기도 꺼리는 등 자금시장 경색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신뢰의 상실이 현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 진정되지 않는 국제 금융시장 =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전날 종가보다 449.36포인트(4.06%)나 급락한 10,609.66을 기록, 지난 2005년 11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유럽 증시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영국 FTSE 100 지수는 전날보다 2.25% 하락한 4912.4로 장을 마쳐 지난 2005년 6월 이후 처음으로 5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은행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하면서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는 9년만에 최대폭으로 올랐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날 3개월 짜리 리보는 0.19%포인트 오른 3.06%를 기록, 1999년 9월29일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트래디셔널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벤저민 핼리버튼은 CNBC에 "AIG의 구제책은 기본적으로 다른 집으로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진화작업을 한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숲에서 나오지 못했다"면서 문제가 지속되고 낙진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금과 은 가격은 폭등해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이날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값은 전날보다 온스당 무려 70달러(9%)나 급등한 850.50달러에 거래를 마쳐 1980년 이후 최대 폭으로 올랐고 12월 인도분 은 가격도 온스당 11%나 급등한 11.68달러를 기록했다.

◇ 신뢰 상실이 문제 = 이날 미 증시의 급락과 은행간 금리 급등은 리먼브러더스에 이어 누가 또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일례로 전날 3.4분기 실적을 발표한 미 1,2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1년전보다 실적이 악화되기는 했지만 상당한 순이익을 거두며 선방했지만 이날 주가는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3분기 순이익이 8억4천500만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70% 감소한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이날 14% 하락했다.

1년전보다 3% 감소한 14억3천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한 모건스탠리 주가도 24% 급락했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주가의 급락은 이들의 생존 가능성을 의심하는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다.

채권발행자의 부도 위험 정도를 반영하는 신용 디폴트 스왑(CDS) 스프레드도 모건스탠리의 경우 680bp(basis point)에서 800bp 이상으로 높아졌고 골드만삭스는 420bp에서 500bp로 확대됐다.

씨티그룹도 40bp가 급등한 310bp를 기록했고 JP모건체이스는 205bp로 20bp 올랐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AIG 구제책에도 불구하고 영국 은행간 금리인 리보가 급등하고 증시가 급락하는 것에서 보여진 시장의 반응은 신뢰가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지금은 돈이 부족한게 아니라 신뢰가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를로스 멘데즈 ICP 캐피털 매니징디렉터는 CNBC에 "다른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이런 문제가 더 발생할 것이고 정부는 이에 제대로 조치를 취할 자세가 안돼 있다고 말했다.

◇ 경제전반 타격 장기화 우려..미 부동산시장 회복 관건 = 금융위기의 지속은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고 금융시장이 안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존 스노 미국 전 재무장관은 이날 블룸버그 통신에 자금시장 경색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면 매우 심각한 경기 하강에 접어들 것이라고 우려한 뒤 경제는 2009년에 어려운 해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안정되려면 모기지 부실로 금융기관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면서 신용위기를 유발한 미 주택시장의 침체가 멈춰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해 이후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의 모기지 관련 손실과 자산 상각 규모는 거의 5천16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미 주택시장 침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빨라야 내년에나 안정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지난 8월 미국의 신규주택건설 착공실적은 6.2%나 하락하며 17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해 주택경기 침체가 풀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손 교수는 "금융시장은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경제성장이 이뤄진 이후에나 안정될 수 있는데 주택시장 침체는 내년이나 되야 풀릴지 말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금융시장이 정상화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