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9월9일 북한의 건국 60주년 기념 행사에 김 위원장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새삼 그의 건강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우선 '김정일 이후' 북한이 어떤 체제로 이행할지가 중요하다. 김정남 김정철 등 아들에게의 세습 체제,군부에 의한 지배,집단지도 체제 등 몇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고,중국에 의한 위기 관리 체제,한국에 의한 흡수 통일이라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이라고 하는 카리스마 지도자 아래에서 장기 독재체제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는 변화가 생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좀 더 많다. 지금과 유사한 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론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카리스마 지도자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일정한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점도 분명하다.

종합하면 세습에 의한 독재체제의 지속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잠정적인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것이다. 그러한 체제가 종전과 같은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의 체제 변화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엔 어떤 변화를 미칠까. 현안인 핵이나 일본인 납치 등 북한 문제는 지금의 체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선 '체제 변혁(regime change)'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현재 체제로는 문제 해결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둘러싼 최근의 언론 보도와 각국 반응을 보면 그런 낙관적 견해는 소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어떻게 변하든 지금 체제보다 한층 불투명성이 높아지는 건 분명하다는 게 중론이다.

핵문제에서 미ㆍ북 간에 핵폐기 검증 절차를 둘러싼 갈등이나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위원회 구성을 연기한 것 등은 북한이 '시간 벌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다른 표면적 이유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건강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김정일 체제는 내부의 다양한 이해 조정에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체제보다는 결단의 속도가 늦어지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 쪽이 핵이나 납치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때문에 김정일 체제에서 핵이나 납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해결 방안을 마련해 두는 게 합리적이란 생각이다. 이번 '김정일 중병설' 소동은 바로 그 점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준 셈이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로 인해 부시 정부가 미ㆍ북 관계에 대해 대담한 결단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정확히 8년 전 클린턴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눈도 벌써 미국의 차기 정권을 향하고 있다. 일본도 정권 향방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북한이 납치문제 해결을 뒤로 미룬 것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초당적 외교'라는 말이 있듯이 원래 외교는 합리적으로 국익을 생각한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큰 변화가 있어선 안된다. 미국의 차기 정권이 어디로 가든,일본의 정권이 바뀌든 말든,지금의 각국 정부는 가능한 한 외교 공백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대북정책 혼란이 지금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왔는지를 봐도 분명하다. 그런 전제 하에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각국은 더욱 깊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