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노변정담(爐邊政談)이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을 벤치마킹했다는 후문이다. 국민과의 대화는 노변 '정담'(情談)일 만큼 부드러웠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경제 살리기'와 '법치'를 토대로 선진화의 기틀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진행도 매끄러웠다. 국민과의 대화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음이 엿보인다.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하고자 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명박 정부 6개월에 대한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국민의 평가를 수용하고 서민의 '삶의 무게'를 가중시킨 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기 때문이다. '분기성장률'을 거론하며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 선방(善防)했다는 실무진의 자평과 대비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명박 정권 6개월은 평가할 그 무엇이 없는 '공백기'였다. 정책능력은 실망스러웠다. 첫 작품이,"행정지도를 통해 통신요금을 내리고 52개 품목의 가격관리를 통해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산업화 시대에나 어울리는 정책이었다. 이는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새 정부의 상징이 됐다. '시장주의'를 표방했지만 정책사고는 '반(反)시장적'이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천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편가르기'로 비쳐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친화적' 내지 '발전친화적' 개념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냈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에게 오만하기까지 했다. 초대 내각 인선(人選)에 대해서도 "부족하니 국민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겸손 대신,듣기에도 거북한 최고엘리트(Best of Best)를 들먹였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고작 "고소영,강부자,에스라인"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사려 깊지도 못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은 "반미,반FTA,민감품목,축산농가,국민건강" 등이 중첩된 '복합의제'였음에도 이를 너무 쉽게 접근해 촛불을 자초했다. 촛불시위가 격해지면서 개혁과제는 표류했다. 초기 6개월 만에 '식물정권'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국민과의 대화가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시행착오를 딛고 개혁 드라이브를 추동할 최소한의 자신감과 리더십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는 '리더십의 방향성'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시장주의' 원칙을 분명히 해 정책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을 불식시킨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대통령의 시장주의 원칙은 견고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우선 감세(減稅)가 부자를 위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일축하고,경제활성화를 위한 감세의 논리를 적극 개진했다. 농촌 문제를 '산업' 입장으로 접근해 농민에 대한 국가보조가 농가소득을 올리는 데 실패한 이유를 적시했다. 대기업 정책의 핵심은 '자원투입'을 요하지 않는 '규제완화'임을 분명히 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일자리 창출'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은 도리어 비정규직에 독(毒)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미분양 사태도 '균형발전'에 포획된 나머지 집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지역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반액등록금에 반대입장을 표하고,중소기업의 '가업상속'을 용이하게 하되 '필요한 만큼'의 정부역할은 수행하겠다고 한 것은 시장주의 원칙을 충실히 견지한 결과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더 이상 반대여론을 의식해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선진화의 길은 '비포장도로'일 수밖에 없다. 상황논리와 정치적 판단이 아닌,시장정합적 경제정책을 일관되게 수행해야 한다. 자율과 신뢰,견제와 균형,혁신,부의 창조와 사회통합을 핵심가치로 삼되 기저에는 '자유주의'가 도도히 흘러야 한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