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서강대 교수ㆍ정치학>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부통령 후보를 지명함으로써 본격적인 선거운동 채비를 마쳤다. 전통적으로 양당의 전당대회가 끝나고 9월 첫 주 노동절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미 대선의 본선 레이스가 막을 올린다.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은 러닝메이트로서 부통령 후보를 선정할 때 대선후보와 일관된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대통령 후보자의 약점을 얼마나 보완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통령 후보를 선정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표를 추가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양당 부통령 후보가 선정된 뒤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눈에 띄게 변했다는 소식은 없다. 혹자들은 버락 오바마 후보가 조 바이든 상원의원을 지명하고 나서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은 것을 보고 부통령 후보 지명이 실패한 것이란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롭게도 양대 정당의 부통령 후보들은 모두 작은 주 출신이다. 민주당의 바이든은 델라웨어 출신 상원의원이고,공화당의 새라 페일린은 알래스카 주지사다. 델라웨어와 알래스카는 대통령선거의 선거인단 수가 최소인원인 3명으로 가장 작다. 더욱이 델라웨어와 알래스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주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선거 때마다 지지가 변하는 주(swing state)가 아니기 때문에 이곳 출신 정치인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다 해도 해당 주로부터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부통령이란 직책은 헌법상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두 번째 높은 위치이고,형식적으로는 상원의 의장직을 맡는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부통령이 미국역사에서 중요 역할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학자들은 부통령직은 대통령이 바빠서 하지 못하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자리라고 혹평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부통령 후보 지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선거운동에서 유권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0년 대선에서 딕 체니를 부통령 후보로 택한 이유는 본인이 워싱턴 정치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를 보완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유대인인 체니를 지명함으로써 유권자의 2%에 불과한 유대인의 지지를 확보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양당의 이번 부통령 후보 지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는 왜 힐러리 대신에 바이든 상원의원을 택했을까. 우선 버락 오바마 측에서 강한 정치경쟁자를 조력자로 삼을 경우 4년간 불편한 관계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수 있다. 힐러리 측에서도 부통령이라는 직책이 향후 정치활동에 그리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전당대회에서 힐러리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면 꼭 그녀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지 않아도 지지율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상원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바이든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택한 것은 오바마 후보의 약점으로 꼽히는 외교안보 분야에 보완책으로 TV토론에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페일린 주지사를 선택한 것은 공화당이 보수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의 화두는 '변화'인데,이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하는가가 선거운동의 핵심이 된다. 민주당은 '잃어버린 8년'을 부각시키고 있고,공화당은 부시 정부에 대한 '비판적 승계'를 메시지로 전달코자 한다. 주연을 부각시키기 위한 조연의 역할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