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첫 장에 위화 얘기가 나옵니다. 위화는 초대 풍월주로 화랑을 만든 인물이지요. 화랑은 '위화랑'의 준말이고 화랑도라는 명칭도 '위화를 따르는 낭도'에서 왔다니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원래 화랑은 삶의 진리를 깨우쳐 인생을 즐기려는 '풍류'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풍류는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살아 있음을 향유하려는 자세,그에 따른 처세와 소통의 기술을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인간의 격과 인생의 질을 높이려는 모든 일을 일컬어 풍류라고 할 수 있지요.

최근에 나온 ≪세상은 큰 놀이터다≫(김정산 지음,예담)는 신라 천년을 이끌었던 화랑의 창시자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소통법을 일깨워주는 역사실용소설입니다. 대하소설 ≪삼한지≫를 쓴 작가가 고대사 속에 숨겨져 있던 화랑의 창업주 얘기를 오늘의 관점으로 비춰줍니다.

위화가 풍류를 즐기면서 왕과 백성들 사이에서 대의를 실천하고 관계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여러 각도로 조명돼 있군요. 때로는 대오각성한 선사의 품격으로,때로는 인생에 달관한 자유인의 초탈함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위화의 인생이 큰 줄기를 이루고 그 속에 짧은 에피소드들을 연결한 이 소설은 하나의 얘기마다 촌철살인의 지혜까지 곁들여 놨습니다.

화랑의 도가 현대와 어떻게 접목되는지 음미해 보는 재미와 함께 세상 경영의 교훈까지 배울 수 있지요. 이른바 역사실용소설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1300년 전 신라인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21세기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풀어가는 지도자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역사의 원형을 이해한다는 것은 문화의 뿌리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며,관계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는 일"이지요.

소제목으로 쓰인 문구들이 잠언처럼 명쾌합니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깊은 물이 큰 배를 띄운다,쉽게 얻으면 쉽게 잃는다,산을 마주하면 산이 보이고 물을 마주하면 자신이 보인다,허상의 백만군대보다 눈앞의 벌 한 마리가 더 두렵다.'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