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부임한 장수만 조달청장은 대전에서 새벽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빡빡한 서울생활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 조깅은 물론 아침산책도 엄두를 못내고 있다. 한 달에 절반 넘게 서울로 출장을 가다 보니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는다. 지난 7월에도 관련 부처와의 업무 협의 등으로 12차례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이달 들어서도 여덟 번 다녀왔다.

이건무 문화재청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5대 궁궐 등 주요 문화재가 서울에 몰려 있는 데다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 서울행이 더 잦아졌다. 현장 확인 위주로 업무가 바뀌면서 매주 2~3일은 서울에서 보낸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은 한 달 중 서울에 머무는 날이 더 많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정책간담회와 차관회의에 참석한다. 수요일에는 중소기업 현장 방문을 위해 전국을 돌아야 한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도 지식경제부 간부회의 때문에 과천을 찾는 일이 많다.

관세 조달 통계 병무 문화재 산림 중소기업 특허 등 대전청사 8개 기관장(청장)들이 서울을 오가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관기관 방문,정책 협의,국회 출석,청와대 보고,행사 참석 등 서울로 달려가야 하는 일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장 청장은 "국유재산관리 업무의 조달청 이관 등 큰 일을 앞두고 의원들과 적극적인 교류도 필요하고 청와대 총리실 등 상급기관을 찾아 다니느라 서울 출장이 불가피하다"며 "힘들지만 유관부서와의 업무 협의조차 기관장이 직접 나서야 하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청장들은 시간이 가장 아깝다고 입을 모은다. KTX 타는 시간만 왕복 2시간에다 역까지 오고 가는 시간을 합하면 하루 4~5시간은 길에다 쏟고 있다. 승용차는 교통체증 때문에 엄두도 못내고 있다. 업무 효율도 크게 떨어진다. 대전청사 내 모 국장은 "결재나 보고 등은 전자시스템을 통해 청장이 서울에서도 처리할 수 있지만 주요 정책결정의 경우 얼굴을 맞대고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며 "청장의 서울 출장이 잦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대전청사 기관장들만의 일이 아니다. 오는 2012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옮겨가는 정부 부처와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에 따라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하게 될 28개 공기업들의 수장도 비슷한 고충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전청사 내 한 기관장은 "국토균형발전도 좋지만 행정기관과 공기업의 지방 이전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며 "수많은 기관장들이 업무 협의를 위해 시간과 돈을 길거리에 날린다고 생각하면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라고 말했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