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력으로 '중화제국' 영화 재현…경제대국 면모도 과시
시진핑 후계구도 정착…12월 개혁개방 30년 준비 모드로


티베트사태나 인권문제, 대기오염을 이유로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중국이 했던 말이 있다.

올림픽을 정치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스크로 입을 막아야 하는 것은 선수가 아니라 서양 정치지도자들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2001년 베이징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정치의 장이었다.

서구 강대국들이 만장일치로 베이징을 올림픽 개최지로 찬성한 것도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중국이 한층 더 개방되고 언론의 자유를 배워 빨리 세계체제에 편입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계산은 달랐다.

지난 19세기 서양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아편전쟁이나 2차대전 당시 일제의 침공, 1949년 공산화 이후 국제사회의 배척 등 역사의 온갖 치욕을 떨쳐내고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전 세계에 알리는 정치적인 행사로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은 세계 강대국으로의 부상은 물론 과거 '중화제국'의 위대한 영화를 되찾는 전환점으로 이번 올림픽을 상징화했다.

전 세계 84개국에서 모여든 국가원수와 행정수반, 왕족 100여명은 개막식을 앞두고 개별 또는 집단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알현'했다.

특히 개막식이 열린 지난 8일 낮 12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오찬장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부부는 후 주석 부부를 면담하기 위해 30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서방 외교관들은 "세계 각국 국가원수들이 마치 중국에 조공을 바치러온 사신들 같았다"고 분위기를 묘사했다.

올림픽 개막식 잔치에 모습을 드러내 후 주석의 '눈도장'을 받지 못하는 국가들은 경제대국 중국과의 교역에서 피해를 볼 것이 명약관화하다.

프랑스의 유통업체 까르푸는 지난 5월 중국 애국 시위대의 불매운동과 반(反)프랑스 시위로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결국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들먹였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급기야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중국 찬가를 불렀다.

이번 올림픽은 중국이 내건 슬로건처럼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 아니라 세계가 '동상이몽'하는 정치의 장이었다.

중국 국내적으로도 올림픽은 정치의 무대였다.

지난 5월12일 쓰촨(四川)성을 강타한 원촨(汶川)대지진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인기에 묻혀 2선으로 물러났던 중국의 1인자 후 주석이 화려하게 전면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가장 실속을 챙긴 사람은 바로 시진핑(習近平·54) 국가부주석이다.

시 부주석은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17전대)에서 오는 2012년 후 주석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내정됐다.

그리고 중국 최고지도부는 그에게 올림픽을 차질없이 치르라는 특명을 첫 과제로 부여했다.

따라서 이번 올림픽은 그의 통치력과 관리능력을 시험하는 첫 관문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시 부주석 입장에서 보면 서구 강대국들이 올림픽을 보이콧했거나 올림픽 기간 테러가 발생해 올림픽이 실패로 끝났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치 생명이 끝장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권 후계자 자리를 라이벌인 리커창(李克强)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 부주석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

올림픽 실무 사령탑인 류치(劉淇) 베이징시 당서기 겸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장과 저우융캉(周永康) 안보담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이끌고 올림픽 테러 대비책, 대기오염 등 각종 문제점을 풀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결국 이번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시 부주석은 첫 관문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후 주석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이 한발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 시 부주석이 넘어야 할 두번째 관문은 오는 12월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시 부주석은 개혁개방 30주년 기념일을 맞아 후 주석이 기조연설을 통해 전 세계에 선언할 정책의 초안을 입안해야 하는 중책을 부여받고 있다.

그는 기조연설 초안을 입안하면서 앞으로 중국이 채택할 새로운 경제 개혁정책과 국가대계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떠오르는 스타' 시진핑 부주석이 올해 중국에서 가장 중차대한 2개의 시험을 모두 성공적으로 통과하게 되면 대내외적으로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서 공인을 받게 되며 당정 원로들과 여론의 평가를 등에 업고 예상보다 빨리 후계구도를 정착시킬 수 있게 된다.

(베이징연합뉴스) 권영석 특파원 ysk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