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서울대 교수ㆍ정치학>

우리는 권력을 빙자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부정을 저지르는 정치인이나 권력 주변인들이 드러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한국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의 사회인가. 최근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 권력이동과 더불어 새로운 유형의 부정부패가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던 차에 물증이 나온 것이다. 권력인들의 비리를 볼 때마다 부패는 인종과 지역,국경도 없지만,좌우이념의 차이도 초월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노무현 정부 때도 권력형 청탁과 비리가 심심치 않게 있었는데,이명박 정부 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소회의 일단이다.

권력에는 유혹이 많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유혹은 권력을 이용해 한 몫을 챙기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만 고유한 '부귀(富貴)'라는 말이 있다. 부는 재산이며 귀는 권력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가진 게 '부귀'인데,부귀를 조심해야 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부까지 탐내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가깝다고 해서 "머루랑 다래랑 먹으며 청산에 살"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정치적 거간꾼'처럼 돈을 받고 관직과 특혜를 약속한다면 매관매직에 다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부패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가. 옛날에는 권력 주변인들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자조적 속담이 난무했는데,이제는 "윗물이 맑지 않아도 아랫물은 맑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한국 사회가 비교적 맑은 사회가 된 데는 의식의 개화도 중요했지만,제도적 뒷받침도 컸다. 금융실명제도 큰 기여를 했고 국가청렴위원회도 맹활약을 했다. 심지어 유권자들이 후보자들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50배의 과태료를 물어내야 한다는 엄격한 법규정도 단단히 한몫 했다.

그러나 우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비리는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리'라고 할 만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 꼴불견의 천태만상이 만천하에 들어나고 있다. 억대의 연봉,명분 없는 돈 잔치,실적을 내는 데는 인색하지만 제 식구 배불리는 데는 능숙한 집단이기주의가 판치는 이야기다. 그런 공기업을 일컬어 언론에서는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도 가고 싶어하는 직장'이라는 큼직한 제목도 단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인간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나쁜 관행과 제도에 불과한데,왜 여기에 신성한 신(神)을 끌어들이는가. 신이 우주를 만든 것처럼 그런 부도덕한 직장이나 공기업을 만들었단 말인가. 인간이 바르게 욕망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벌어진 부끄러운 사태에까지 신을 호칭한다면 '신성모독'에 불과하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성악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두고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하는 것은 맞지만,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 정도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추태를 두고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간이 절제할 줄 몰라 저지르는 추태와 비리는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악설을 뒷받침하는 생생한 자료로 보아야 한다. 또 그런 직장이라면 '신이 내린 직장'이나 '신도 가고 싶어하는 직장'이 아니라 '신도 외면하는 직장'이라고 해야 옳다. 지금이야말로 권력 주변인들의 부정비리뿐만 아니라 일상적 직장에서 죄책감 없이 일어나는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질 때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진정 맑은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