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 <중소기업청장 hongsukwoo@hanmail.net>

혼자 공연장에 갔는데,옆자리가 비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2년 전 러시아 볼쇼이 오페라단이 내한해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공연한 적이 있다. 음반으로만 접하던 '반지'를 오래 전부터 꼭 보고 싶었기에 비싸지 않은 좌석으로 일요일표 2장을 일찌감치 구입했다. 그러나 5시간을 앉아있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공연 당일날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다른 사람을 부르기에도 시간이 없어 남은 표는 암표 아주머니에게 그야말로 헐값에 넘겼다.

좌석은 꽉찼고,오케스트라는 음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이제 누군가가 내가 판 표를 사 들고는 내 옆에 앉을 것이다. 혼자서,휴일 오후에,갑작스럽게,바그너가 보고 싶어 졌다면 아마도 남성보다는 여성일 것이고,아직 남자친구가 없는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음악과 관련된 책이라도 몇 권 가슴에 안고 들어온다면 이 상황에 더욱 어울릴 것이다.

이때 "실례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 사람이 옆에 섰다. 누가 알았다면 날보고 자리 펴고 나가 앉으라고 했을 정도로 예측은 정확했다.

"그 표,제가 판 표입니다. 갑자기 바그너를 보러 오시다니 음악을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니,뭐,조금 좋아합니다" "저는 남들이 좋아한다니까 한번 관심을 가져본 것인데 바그너는 날이 갈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더군요" "저도 마찬가지 수준입니다. "

각본대로라면 이런 대화가 오고갔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5시간 동안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공연시작 전에 로비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있는데 친구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아주 친한 친구로,가끔 부부동반 식사도 하는 사이이며 부인은 아내의 고교 동창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친구도 공무원인지라 표의 가격대 수준이 나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자리에 앉고 보니 지척에 친구부부가 앉아 있다. 휴식시간에 보자면서 나에게 손까지 흔든다. 이러니 옆사람에게 말을 걸 여유가 있을리 없었고,두 번의 휴식시간을 꼼짝없이 친구부부와 보내고 말았다.

편하게 얘기할 옆자리 사람으로 아내밖에 없는 것이 나의 팔자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