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최근 폭등했던 국내 물가가 내림세로 돌아설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외생 변수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국내 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 억눌러 왔던 물가 상승 압력이 서서히 분출하고 있어 당분간 고물가 국면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유가

원자재 가격 하락 '청신호'

10일 정부 당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제 유가 및 곡물가가 내림세를 보이면서 국내 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은 국내 물가 상승을 이끌었던 양대 변수로 이들 원자재 가격 하락은 최근 인플레이션의 주 엔진이 꺼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5.9% 중 석유류는 2.02%포인트 비중을 차지했다.

또 석유류가 포함된 공업제품은 3.48%포인트였다.

소비자물가 상승의 절반 이상은 유가 상승 때문이라는 의미다.

최근엔 다소 잠잠해졌지만 국제 곡물가격 상승 역시 밀가루 및 빵.라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먹을거리 가격 급등으로 연결됐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완전히 꺾였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최근 조정폭만 해도 상당해 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최근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의미 있는 수준의 하락세를 보였다"며 "낙엽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해 물가 상승 분위기가 진정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최근 외환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물가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중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수입물가 상승률을 더욱 높였는데 하반기에는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환율이 수입물가를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 "8월에는 6%대 넘어설 듯"

그러나 정부 당국은 물론 전문가들 역시 당분간 고물가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가는 한번 불이 붙으면 그리 쉽사리 꺼지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는 탓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위기관리대책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두바이유가 배럴당 116달러까지 떨어졌고 밀 등 곡물가격도 작년말 대비 하락했다"며 "그러나 고유가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8∼9월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7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7월에 소비자물가가 5.9%에 이르렀으며 8월과 9월에도 만만치 않은 상승률이 나올 수 있다"며 "7월에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하반기 소비자물가를 5.2%로 봤는데 그보다 조금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8월 물가상승률이 7월보다 높아져 6%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KDI 송준혁 연구위원은 "원유 가격이 떨어졌지만 그동안 눌러뒀던 물가상승 압력이 서서히 분출하고 있고 지난해 8월 물가상승률이 매우 낮아서 기저효과가 생길 것"이라며 "8월 물가상승률이 6%대를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8월 물가상승률은 2.0%로 2007년 월별 물가상승률 중 두번째로 낮은 달이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유가 상승분이 추가로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물가당국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지 2~3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며 "국제유가가 최종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데에 2주~5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가 내려가는 데에는 좀 더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임금.공공요금이 시험대

전문가들은 이후에도 물가상승률이 쉽사리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물가 상승이 국제 유가 및 곡물가격 등 외생 변수에 의한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공공요금이나 개인서비스 요금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 이성태 총재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원유나 원자재를 별로 쓰지 않는 부분도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며 "과거에 가격조정을 못한 부분이 이런 시기에 한꺼번에 가격을 올리는 현상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수석연구원은 "최근 금리를 올렸지만 물가에 반영되기까지 약 2개월의 시차가 있고 공공요금 및 개인서비스 요금 인상도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물가가 8월 중 6%를 돌파한 뒤 하반기 내내 6%대 초반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유가 및 곡물가격 하락으로 물가를 내릴 여력이 생긴 품목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가격 인하 유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KDI 송준혁 연구위원은 "물가상승률을 현재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 원자재 등 외생변수라면 공공요금 및 개인서비스 등 내생변수는 물가 상승 기간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특히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로 기업 이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연구위원은 "이럴 때에는 정부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