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즐기는 요리로 만들고파"

골뱅이는 애주가들이 최고로 꼽는 술 안주 중 하나다.

인터넷에서 이메일 주소를 쓸 때 사용하는 ‘@'의 별칭을 골뱅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의 골뱅이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유성물산교역은 골뱅이 통조림 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63%로 단연 1위 기업. 전 세계 골뱅
이 소비량 5500여t 의 80%가량인 4500여t 이 한국에서 소비되는 점을 감안하면‘한국 1등’은‘세계 정상’이라 할 만하다.

외국에서는 일본인과 프랑스인 일부가 골뱅이를 먹는 정도다. 유성물산교역은 창업주 강순걸 회장(73)에 이어 2003년부터 3형제 중 장남인 강승모 대표(46)가 가업을 잇고 있다. 강 대표는 "우리 회사 브랜드 '유동 골뱅이'는 바로 국내 골뱅이의 역사와 다름없다"며 "골뱅이를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올려 놓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평양이 고향인 창업주 강순걸 회장은 해방 이듬해께 서울로 와 동대문 인근에서 신문팔이 담배팔이로 생활비를 벌어 가며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59년 무역회사인 천일무역에 들어가 홍콩의 화교를 대상으로 인삼 등 한약재를 수출하면서 무역 업무를 배웠다.

강 회장이 유성물산교역을 창업한 때는 1965년.서울 명동에 책상 2개와 직원 2명을 두고 한약재를 수출하는 일을 했다. 강 회장은 화교들이 준 정보로 1968년 냉해 피해를 입은 일본에 팥을 수출,큰돈을 벌었고 이를 밑천삼아 사업을 늘려 나갔다. 강 대표는 "부친께서는 일본에 돼지(생돈)까지 수출했는데 운송 과정에서 죽는 것을 보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말씀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1972년에는 강원도 묵호(현 동해시)에 오징어채 가공 공장을 세웠고 74년부터는 통조림(꽁치,복숭아) 사업으로까지 확장했다. 이런 강 회장이 잘나가던 기존 사업을 접고 골뱅이 통조림 사업으로 한우물을 파기 시작한 것은 쫄깃한 골뱅이 육질 맛을 접한 1980년.

골뱅이 통조림이 인기를 끌자 80년대 중반 이후 가공업체들이 20여개로 늘어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90년 이후 동해안에서 잡히던 골뱅이가 고갈되기 시작했다. 선주들에게 선수금을 줘도 원하는 만큼의 물량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골뱅이 구입 가격이 80년대 줄곧 ㎏당 800원대이던 것이 90년 들어서 3600원으로 뛰었다. 이 때 대부분의 골뱅이 통조림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강 회장은 골뱅이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동남아부터 북유럽 남미까지 웬만한 지역은 다 다녀왔다. 값도 싸고 물류비 부담도 덜한 중국과 베트남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골뱅이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 지역 골뱅이는 수온이 높은 데서 자란 탓인지 맛이 비리고 육질이 물러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 강 회장을 살린 것은 영국산 골뱅이였다. 영국 해안에서 잡히는 골뱅이가 우리 입맛에 '제격'이라는 소식을 접한 강 회장은 93년 초부터 이를 들여왔다. 골뱅이를 식용으로 하지 않는 영국인들은 일부 식도락가들이 찾는 프랑스에 수출할 목적으로 골뱅이를 잡았다. 강 대표는 "당시 영국에서는 한국에 수출할 골뱅이 가공 공장만 20여 곳이 생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며 "하지만 외환위기 때 한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3분의 1로 줄어들면서 영국의 골뱅이 가공 공장 중 절반 넘는 곳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강 대표가 가업을 잇게 된 것은 강 회장이 2002년 7월 뇌출혈(뇌수술 2회)로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가족 회의를 열어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금융협력과장으로 있던 강 대표가 회사를 맡기로 했다. 강 대표는 "가업을 버리면 결국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와 고민 끝에 공직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듬해 2월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회사에 변화를 주었다. 우선 회계시스템 전산화,급여의 은행 자동이체,이메일 활용,전자결재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고성에 35억원을 들여 8910㎡ 부지에 연건평 5280㎡ 규모의 세계 최대 골뱅이 통조림 공장(1일 6만캔 생산)도 세웠다. 또 요리사를 채용해 세계인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골뱅이 요리를 개발하는 등 골뱅이 글로벌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강 대표는 "골뱅이 요리를 '비빔밥'처럼 세계인이 찾는 한국의 대표 요리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최근 북한산(産) 골뱅이도 들여와 껍데기째로 수산물 전문식당에 공급하고 있다. 또 소량이지만 동해안에서 잡히는 골뱅이와 꽁치 황도 통조림도 생산한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 목표는 주로 교민을 상대로 한 수출 320만달러를 포함해 480억원이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