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물가보다 경기침체 걱정할때"

국내 경제의 화두가 '물가'에서 '경기'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가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다 각종 원자재값 안정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되고 있는 반면 경기는 내수소비 침체 등으로 '급속히 냉각'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금리인상보다는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금리인하를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 둔화

국내 물가 불안의 진앙지였던 국제 원자재 값이 최근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때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서부텍사스산원유 기준)는 최근 121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다른 상품들에서도 '거품'이 빠지는 소리가 나고 있다. 대표적 상품지수인 로이터ㆍ제프리CRB지수(원유 옥수수 설탕 등 19개 원자재로 구성)는 지난 4일 일간 낙폭으론 5개월 만에 최대인 3.4% 하락해 상품 시장의 대세 하락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국제 원자재값 하락은 국내 물가에 '청신호'다. 원자재값이 하락하면 비용 상승 요인이 감소해 물가 상승세가 누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 "상품가격 하락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있는 글로벌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달 전 만해도 1050원 선을 넘나들던 원ㆍ달러 환율도 최근 1010원 대로 낮아져 물가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기는 '찬바람'

반면 경기는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8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3.9%(전년동기대비)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1분기 5.8%,2분기 4.8%로 이미 성장률 둔화 조짐이 뚜렷이 나타난데 이어 하반기에는 성장률이 아예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소비 침체는 심각하다. 지난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1%를 기록,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에 달하는 소비가 침체되면 국내 경기가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소비만 놓고 보면 이미 침체 국면"이라며 "생각보다 경기가 빨리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비투자도 영 시원치 않다. 지난 2분기 0.8%(전년동기대비)로 작년 3분기(2.3% 증가)보다 큰 폭으로 증가율이 둔화됐다. 고용도 부진하다. 지난 6월 취업자수는 3년4개월 만의 최저인 14만7000명(전년동기대비) 증가에 그쳤다. 당초 정부 목표치(35만명)는 물론 경기 침체를 고려한 수정 목표치(20만명)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금리 인상 신중해야" 확산

7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각계에서 '금리 인상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경기 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는 데다 가계와 기업의 이자상환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최근 경제상황과 금리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한은이 작년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뒤 올해 3월 말까지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 증가액이 총 2조9000억원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손영기 대한상의 조사기획팀장은 "금리인상은 경기를 위축시키는 정책"이라며 "경기하강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금리인상은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오히려 금리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물가는 3분기가 피크(정점)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 경기 하강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라며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서서히 금리 인하 시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용석/유병연/김현예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