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당국, "우리 자체 해결" 주민 독려

"이제는 어디서 쌀을 가져 올 데도 없고 또 누가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심각한 식량난을 겪는 북한의 당국이 최근 자신들의 식량난 책임을 외부요인에 전가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세계적인 식량 위기상황과 그 심각성을 언론매체들을 통해 반복 전파하는 가운데 '자체 해결'을 강조하면서 하는 말이다.

북한 당국은 특히 식량문제 해결이 "단순한 경제실무적 문제이기 전에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운명과 관련된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체제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북한 매체들은 이와 함께 아사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던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회상할 때 사용하던 "어려운 식량사정", "식량사정이 긴장한 조건" 등의 표현을 현 상황을 기술할 때 빈번하게 사용하는 등 총체적인 식량위기 상황을 대내외에 드러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TV는 지난 26일 하루 동안에만도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연쇄적 후과', '세계적 식량위기 엄중',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움직임', '중국, 식량절약 사업' 등을 방송했다.

또 '식량문제로 인한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7.29, 중방), '아프리카 나라들 식량위기'(7.25, 중앙TV) 등을 통해선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최악의 식량위기는 지금 시시각각으로 인류의 생존과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고 있다"며 영양실조와 기아에 따른 사망 외에도 시위와 폭동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외부로부터 식량을 들여오기도 어렵고 지원해주는 곳도 없다면서 "오직 살 길은 자체적으로 농사를 잘 지어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력갱생 뿐"이라는 점을 강조, 주민들의 내핍과 노력 배가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기도 한 송윤희 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 30일 조선중앙방송에 출연해 "심각한 식량위기로 국제사회가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또 수입에 의존해서는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농장원들은 똑똑히 인식하고 있다"며 "자체로 농사를 지어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분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4일 북한 농업성 최현수 부국장도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과 인터뷰에서 국제 곡물가의 급등에 우려를 나타내고 "이제는 식량을 주겠다는 나라도 없고, 줄 형편에 있는 나라도 없다"며 "믿을 것은 오직 매개 나라 인민 자신의 힘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오늘 농업생산을 늘리는 문제는 단순한 경제실무적 문제이기 전에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의 운명, 더 나아가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운명과 관련된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지적, 식량난 해결이 '체제수호'의 관건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간부들을 각 지역의 협동농장에 내려보내 농민들에게 세계적인 식량위기 상황을 설명하고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자면 오직 자기 힘을 믿고 이악하게 달라붙어 농업생산을 결정적으로 늘리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집중 선전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이례적인 태도의 기본 배경엔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 식량난의 심각도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지만, 장 피에르 드 마저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평양사무소장은 30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최근 3주간 식량농업기구(FAO)와 공동으로 북한 전역에서 긴급 식량안보 평가를 실시한 결과 북한이 지난해 8월 발생한 홍수와 흉년으로 인해 1990년대 후반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식량위기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이 29일 북한 소식지에서 "강원도 판교군 판교읍에 식량 사정과 관련해 사회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이 곳곳에 나붙어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이 북한 주민들의 내부 동요도 커지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두환 기자 d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