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교계에선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고,개신교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예수의 신성을 모독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나라 밖에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지역마다 종교가 개입되지 않는 곳이 없다. 평화와 화해를 지향하는 종교들이 왜 갈등과 분쟁의 진원지가 되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두 가지 시도가 주목된다.

한국학술협의회가 발행하는 반연간 학술지 ≪지식의 지평≫ 4호는 '다시 종교를 생각한다'를 기획특집으로 마련했다. 배국원 침례신학대 교수는 '백년 동안의 고독-종교적 근본주의의 동기와 유형'이라는 글을 통해 "종교적 근본주의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전통적·종교적 가치를 배제해버린 근대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면서 이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은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고 '그들'에 대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분노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외부 세계에 대한 분노가 테러나 전쟁 등의 극단적 행동을 낳는다는 것.

그는 "21세기에 와서도 갈수록 성행하는 종교적 근본주의는 분명 우리 시대의 지성적 스캔들이며 현대인들은 이를 통해 인간 이해의 지평을 더욱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 교수는 한국의 불교와 기독교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접촉이 잦아지면서 상호 이해와 포용보다는 긴장과 갈등이 커졌다며 갈등 극복 방안으로 원효의 화쟁론에 주목했다. 원효가 화쟁론에서 다원적 시각을 강조하면서 어느 한 쪽의 견해에만 집착하면 결국 실재를 볼 수 없다고 한 것처럼 한 면만 절대화하지 말고 양쪽을 보완적으로 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오 교수는 '함께 일한다''함께 생각한다''함께 변화한다'는 세 가지 명제를 제시했다.

정재식 보스턴대학 석좌교수도 권두 논문 '성스러움의 독점과 공유'를 통해 "오늘날 성스러움의 의미는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과 번영을 이룩하는데 헌신하는 것"이라며 성스러움의 본래 뜻 회복을 강조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학적 이견(김영경 고려대 강사),9·11 테러 이후 종교와 정치 관계 변화(엄한진 한림대 교수),과학과 종교의 갈등(김희준 서울대 교수),이슬람 문명의 지적 유산(정수일 고려대 강사),이슬람 종교·체제의 양면성(김호동 서울대 교수) 등에 대한 글도 유용하다.

한편 불교,개신교,천주교 등 7개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17∼20일 서울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종교에서 비롯된 국제적인 분쟁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국제 세미나를 연다.

이들은 '충돌과 대화:갈등 지역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아시아 종교인의 역할'을 주제로 아프가니스탄,필리핀 민다나오,이라크의 분쟁 원인과 해결책,이슬람 지역 평화를 위한 국제 종교 간 네트워크 구축방안 등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는 분쟁 지역의 당사자인 이라크와 파키스탄,방글라데시,필리핀,인도네시아 등지의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해 힌두교,개신교,가톨릭,불교,성공회 등의 다양한 종교인들이 발제자나 토론자로 참여해 실질적 논의가 기대된다. 이슬람과 가톨릭이 갈등을 빚고 있는 민다나오 지역을 비롯해 세 지역 모두 종교가 분쟁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