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브로카를 비롯한 19세기 뇌과학자 몇은 머리 크기로 지능을 판정했다. 뇌 무게가 가볍다는 이유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주장도 계속했다. 큰 얼굴을 흠으로 아는 요즘 젊은층이 들으면 코웃음칠 얘기지만 오래도록 맞다고 우겼다.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뒤에도 편견을 굽히지 않았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수필가 알프레드 가드너(1865~1946)는 '모자 철학'이라는 글에서 이런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의 억지에 대해 꼬집었다. 모자 장사는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모자 지름이 7인치 이상이냐 아니냐로 단정짓고,치과의사는 치아 상태로 성격과 계층을 잰다는 것이다.

제화공은 구두의 질과 손질 상태에 따라 경제적 형편을 가늠하고,재단사는 의복,가구상은 의자나 양탄자,미식가는 요리나 술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고도 했다. 직업은 이처럼 한사람의 사고방식은 물론 무의식적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대에 관계없이 선생님은 가르치려 들고,형사는 아래위를 훑어보고,기자는 이것저것 캐묻는다.

미국에선 최근 의류매장 직원들이 '옷 개기 강박증'을 호소한다는 보도다. 1980년대 '갭(GAP)'에서 옷을 색상과 모양별로 반듯하게 개어 진열한 이래 다른 곳에서도 하루 몇 시간씩 옷을 개야 했는데 그 결과 퇴사 후에도 흐트러진 옷만 보면 화가 치밀면서 저도 모르게 갠다는 것이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강박증이 단순히 몸을 피곤하게 하는 데서 나아가 불필요한 일에 얽매이도록 함으로써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를 괴롭힐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가드너의 말처럼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주관적인 틀에 꿰맞춰 파악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다.

어떤 일에 익숙하고 능통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기존 방식을 맹신하다 보면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 옷은 재질과 종류에 따라 접어 놓을 수도,동그랗게 말아둘 수도 있다. 자신이 아는 것과 중시하는 것만이 맞고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사물의 다양성은 물론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살펴볼 수 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