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두고 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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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ㆍkimha@medimail.co.kr>
며칠 전 무릎이 아프다는 40대 후반의 부인이 찾아왔다.류머티즘내과 의사는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진찰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가 걸음걸이에 이상이 없고 과체중도 아니라는 것은 이미 체크가 끝났다.
"네,그러시군요.지하철 계단은 잘 오르내리시나요?" 높은 산도 잘 올라간다니 그 부인은 어쩌면 나보다 관절이 더 건강할 것 같다.일련의 병력을 체크한 후 관절 진찰을 포함한 진찰을 시작한다.전신 관절에 부종 없음,약간의 압통,무릎 관절 마모음 없음,반월판 파열 소견 없음.
"관절 정상이세요.지금 검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산길에는 등산용 지팡이를 쓰도록 하세요.두고 보시다가 한 달 후에도 계속 아프거나 관절통이 심해지면 다시 오세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두고 봄'의 미학이 잘 안 통하는 것 같다.
"아니,나는 심각한데 검사도 안 해주고,내 증상을 무시하는군…." 이런 반응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원인,자연 경과,유의할 점 등을 보충 설명하고 환자를 안심시켜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다른 병원에 가서 기어코 피검사와 방사선 검사 일습을 하고 만다.그런데 검사가 필요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긴 시간을 환자와 대화해야 한다.
그래도 수입은 한푼도 생기지 않는다.
"아,그래요? 검사하세요"라고 마우스를 클릭하면 몇 초에 끝날 일이고,기계에 팔만 갖다 대면 모든 질환이 진단된다는 환상이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는 현실도 의사들이 환자를 '두고 보기'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검사는 완벽한 것이 아니며 꼭 필요한 소견을 집어내지 못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알 필요 없는 소견을 들춰낼 수도 있다.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한꺼번에 10여가지가 넘는 검사를 하고 나면 어딘가 이상이 나올 수 있고,대부분 심각하지 않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검사 당사자는 "조기 진단을 못해 천수를 못 누렸다"며 아는 사람의 괴담을 떠올리며 불필요한 연관 검사를 하게 된다.
해결책은 검사를 안 하는 것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의사 상담과 검사 수가의 비중을 과감히 바꾼다든지 하는 것인데,그러기에는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옆사람 차 곁눈질하기와 명품 소비가 국민 전염병이 되어버린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실패를 위한 처방일 것이다.
며칠 전 무릎이 아프다는 40대 후반의 부인이 찾아왔다.류머티즘내과 의사는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진찰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가 걸음걸이에 이상이 없고 과체중도 아니라는 것은 이미 체크가 끝났다.
"네,그러시군요.지하철 계단은 잘 오르내리시나요?" 높은 산도 잘 올라간다니 그 부인은 어쩌면 나보다 관절이 더 건강할 것 같다.일련의 병력을 체크한 후 관절 진찰을 포함한 진찰을 시작한다.전신 관절에 부종 없음,약간의 압통,무릎 관절 마모음 없음,반월판 파열 소견 없음.
"관절 정상이세요.지금 검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산길에는 등산용 지팡이를 쓰도록 하세요.두고 보시다가 한 달 후에도 계속 아프거나 관절통이 심해지면 다시 오세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두고 봄'의 미학이 잘 안 통하는 것 같다.
"아니,나는 심각한데 검사도 안 해주고,내 증상을 무시하는군…." 이런 반응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원인,자연 경과,유의할 점 등을 보충 설명하고 환자를 안심시켜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다른 병원에 가서 기어코 피검사와 방사선 검사 일습을 하고 만다.그런데 검사가 필요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긴 시간을 환자와 대화해야 한다.
그래도 수입은 한푼도 생기지 않는다.
"아,그래요? 검사하세요"라고 마우스를 클릭하면 몇 초에 끝날 일이고,기계에 팔만 갖다 대면 모든 질환이 진단된다는 환상이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는 현실도 의사들이 환자를 '두고 보기'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검사는 완벽한 것이 아니며 꼭 필요한 소견을 집어내지 못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알 필요 없는 소견을 들춰낼 수도 있다.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한꺼번에 10여가지가 넘는 검사를 하고 나면 어딘가 이상이 나올 수 있고,대부분 심각하지 않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검사 당사자는 "조기 진단을 못해 천수를 못 누렸다"며 아는 사람의 괴담을 떠올리며 불필요한 연관 검사를 하게 된다.
해결책은 검사를 안 하는 것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의사 상담과 검사 수가의 비중을 과감히 바꾼다든지 하는 것인데,그러기에는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옆사람 차 곁눈질하기와 명품 소비가 국민 전염병이 되어버린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실패를 위한 처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