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차디 찬 6월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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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요즘 시청앞 광장이 텐트촌으로 변해 지나는 시민들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저녁이면 밝혀지는 촛불들이 간절한 기도,다정한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가슴은 납덩이처럼 내려 앉는다.
밤마다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기습 출동하는 정체불명 사내들의 기획된 난동 행위는 처음 촛불행사 순수성에 걸었던 일말의 기대를 내동댕이쳤다.
먹거리에 농간을 부려 국민건강 위험 요인을 만드는 발생지가 국내이든 해외이든 그것은 변명할 여지 없는 범죄이다.
그래서 생산자의 양심과 제품관리와 소비자의 바른 고발정신이 소중하고 시민단체의 감시와 정부의 감독기능이 필요하다.
돈을 노린 시민의 거짓협박이 물의를 빚는 빗나간 사례들도 있지만 생산기업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인은 수입 식품에 매우 민감하다.
중국산 어패류와 농산물에 때로는 지나치게 날카롭다.
그것은 단순히 국민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농어민에 대한 배려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산이라면 잔류 농약의 허용치 초과 여부에 너그럽고,축산 오폐수가 식수원에 웬만큼 방류되어도 단속이 눈감아 주는 경향이 있다.
젖소가 제 이름으로 팔리는 쇠고기가 없을 만큼 유통과정에서 분류 기준과 관리가 허술하다.
동물성 단백질을 포함한 수입사료를 먹여 사육한 소도 한우고기로 팔린다.
호주산도 국산으로 둔갑한다.
미국산에 대해선 수입금지 조치가 철저했다.
광우병 발생을 구실로 전면 수입금지 조치했다가 수입재개 여부가 한ㆍ미 FTA 협상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ㆍ미 FTA는 반미 성향의 노무현 정부로선 거시적 경제이익을 챙기려는 놀라운 발상전환이었다.
그러나 협상진전을 늦춤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심장에 대못을 박고 떠났다.
밀고 당기는 긴 협상 끝이라 한ㆍ미 FTA 타결의 필요성에 대다수 국민이 수긍하게 됐다.
졸속 느낌이 있던 껄끄러운 대목을 추가협상으로 마무리한 이제 광우병 우려도 사그라졌다.
남은 일은 촛불 끄고 글로벌 세계에 걸맞은 성숙된 의식이다.
일을 시작하기는 쉬워도 마감하기는 어렵다.
지금 야당의 입장이 그렇다.
처음 촛불이 켜질 때는 반겼지만 지금은 지도력도 책략도 없어 난감하다.
국회로 등원해야 제도권 정치가 광장의 정치를 밀어낸다.
지금 광장은 반미 운동권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화로 나가는 지구촌 역사 흐름을 되돌려 폐쇄국가로 회귀하기를 지향하는 자들이 '진보'의 이름을 참칭하고 있다.
세계 최하위 인권자유국가인 북한을 흠모하는 주제에 감히 한국 사회의 인권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정부 공권력을 상대로 가냘픈 민초가 맞선다는 그들의 항쟁은 거짓 몸짓이다.
그들은 맨주먹이 아니라 무장하고 있다.
초기의 자발성은 기획연출로 바뀌었다.
전경들 두들겨 패면서 손잡고 유모차 태우고 어린이를 동원해 방패 삼았다.
어린이 인권은 실종되고,아이들 다쳐 큰일 터지기를 은근히 기다리듯 하는 어른들의 용렬함과 비겁함만 남았다.
비겁한 자들은 보수진영에도 허다하다.
자유민주 시장경제 혜택을 만끽하고도 체제수호에 몸 사린다.
똘똘 뭉친 소수에 뿔뿔이 흩어진 다수가 압도 당한다는 역사교훈은 잊고 있다.
1% 미만의 볼셰비키가 러시아 공산 혁명을 성공시켰다.
우리 보수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이기적 치부와 출세주의,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망각으로 치장하고 산다.
일부 보수 언론도 눈치보기는 마찬가지다.
위협받는다고 광고 못 주는 기업도 자기들 성장 토양 지킴이 정신이 멀었다.
이러다가 경제는커녕 나라까지 위태롭다.
내일 6월28일은 반세기 전 남침한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한 날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 마음에 이미 해방구가 자리잡고 있는지 모른다.
요즘 시청앞 광장이 텐트촌으로 변해 지나는 시민들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저녁이면 밝혀지는 촛불들이 간절한 기도,다정한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가슴은 납덩이처럼 내려 앉는다.
밤마다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기습 출동하는 정체불명 사내들의 기획된 난동 행위는 처음 촛불행사 순수성에 걸었던 일말의 기대를 내동댕이쳤다.
먹거리에 농간을 부려 국민건강 위험 요인을 만드는 발생지가 국내이든 해외이든 그것은 변명할 여지 없는 범죄이다.
그래서 생산자의 양심과 제품관리와 소비자의 바른 고발정신이 소중하고 시민단체의 감시와 정부의 감독기능이 필요하다.
돈을 노린 시민의 거짓협박이 물의를 빚는 빗나간 사례들도 있지만 생산기업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인은 수입 식품에 매우 민감하다.
중국산 어패류와 농산물에 때로는 지나치게 날카롭다.
그것은 단순히 국민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농어민에 대한 배려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산이라면 잔류 농약의 허용치 초과 여부에 너그럽고,축산 오폐수가 식수원에 웬만큼 방류되어도 단속이 눈감아 주는 경향이 있다.
젖소가 제 이름으로 팔리는 쇠고기가 없을 만큼 유통과정에서 분류 기준과 관리가 허술하다.
동물성 단백질을 포함한 수입사료를 먹여 사육한 소도 한우고기로 팔린다.
호주산도 국산으로 둔갑한다.
미국산에 대해선 수입금지 조치가 철저했다.
광우병 발생을 구실로 전면 수입금지 조치했다가 수입재개 여부가 한ㆍ미 FTA 협상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ㆍ미 FTA는 반미 성향의 노무현 정부로선 거시적 경제이익을 챙기려는 놀라운 발상전환이었다.
그러나 협상진전을 늦춤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심장에 대못을 박고 떠났다.
밀고 당기는 긴 협상 끝이라 한ㆍ미 FTA 타결의 필요성에 대다수 국민이 수긍하게 됐다.
졸속 느낌이 있던 껄끄러운 대목을 추가협상으로 마무리한 이제 광우병 우려도 사그라졌다.
남은 일은 촛불 끄고 글로벌 세계에 걸맞은 성숙된 의식이다.
일을 시작하기는 쉬워도 마감하기는 어렵다.
지금 야당의 입장이 그렇다.
처음 촛불이 켜질 때는 반겼지만 지금은 지도력도 책략도 없어 난감하다.
국회로 등원해야 제도권 정치가 광장의 정치를 밀어낸다.
지금 광장은 반미 운동권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화로 나가는 지구촌 역사 흐름을 되돌려 폐쇄국가로 회귀하기를 지향하는 자들이 '진보'의 이름을 참칭하고 있다.
세계 최하위 인권자유국가인 북한을 흠모하는 주제에 감히 한국 사회의 인권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정부 공권력을 상대로 가냘픈 민초가 맞선다는 그들의 항쟁은 거짓 몸짓이다.
그들은 맨주먹이 아니라 무장하고 있다.
초기의 자발성은 기획연출로 바뀌었다.
전경들 두들겨 패면서 손잡고 유모차 태우고 어린이를 동원해 방패 삼았다.
어린이 인권은 실종되고,아이들 다쳐 큰일 터지기를 은근히 기다리듯 하는 어른들의 용렬함과 비겁함만 남았다.
비겁한 자들은 보수진영에도 허다하다.
자유민주 시장경제 혜택을 만끽하고도 체제수호에 몸 사린다.
똘똘 뭉친 소수에 뿔뿔이 흩어진 다수가 압도 당한다는 역사교훈은 잊고 있다.
1% 미만의 볼셰비키가 러시아 공산 혁명을 성공시켰다.
우리 보수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이기적 치부와 출세주의,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망각으로 치장하고 산다.
일부 보수 언론도 눈치보기는 마찬가지다.
위협받는다고 광고 못 주는 기업도 자기들 성장 토양 지킴이 정신이 멀었다.
이러다가 경제는커녕 나라까지 위태롭다.
내일 6월28일은 반세기 전 남침한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한 날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 마음에 이미 해방구가 자리잡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