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골디락스(Goldilocksㆍ물가안정 속의 고성장)는 가고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했다.

유로존(유로 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를 기록하며 16년 만의 최고치를 나타냈다.

신흥시장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터키 남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등의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1990년대 시작된 골디락스 시대엔 세계화와 규제완화,생산성 향상 등이 인플레이션 없는 호황을 가능케하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동력은 시들어가고 있다.

규제 완화와 개방 대신 규제 강화와 보호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생산성도 내리막길이다.

일각에선 치솟는 유가와 곡물가를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배후엔 느슨한 통화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에너지와 곡물 가격 급등은 중국발 수요 쇼크나 공급 부족 사태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전세계에 풀린 과도한 유동성이 밀어올린 결과로 봐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량을 대거 늘렸다.

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신용 위기에 맞서 엄청난 '돈폭탄'을 시장에 투입했고,시중에 풀린 단기 부동 자금들이 상품 시장에 둥지를 틀면서 원유와 곡물가격 급등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근본 처방은 통화 긴축이란 결론이다.

아시아와 동유럽 중동의 통화 정책도 고삐가 풀려 있긴 마찬가지다.

여기에 일조한 것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미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페그제'다.

페그제 국가들은 고정환율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물가상승에 대처해 금리 인상을 단행할 여지가 없다.

FRB가 페그제를 통해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특히 요즘 인플레이션은 한 나라나 일부 지역의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심화된 세계화 현상은 세계 시장을 하나로 묶는 글로벌 시장 통합을 촉진했고 인플레이션도 세계화되는 현상을 연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나라 중앙은행의 힘만으로는 자국의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다스리기에 역부족인 상황을 맞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오는 7월에 0.2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중앙은행들이 이러한 금리인상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ECB 처방은 약효를 발휘할 수 없다.

더욱이 ECB가 금리인상 의지를 밝힌 이후 유로화는 오히려 약세 행진을 하고 있다.

금리 인상의 제한된 약효마저 유로화 약세로 상쇄되고 말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싸움의 성패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공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사이에 서로 다른 철학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 한 방향으로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세계 중앙은행들의 신뢰와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정리=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이 글은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조아킴 펠스가 'Globalized Inflation'이란 제목으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