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퇴진에 이어 전략기획실 해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새로 도입될 삼성의 계열사 독립 경영 체제가 순항할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3일 삼성에 따르면 삼성은 25일 마지막 계열사 사장단회의를 열어 전략기획실 근무 임원들의 계열사 복귀, 다음달 1일부터 가동될 사장단협의회 운영 방안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 삼성 70년 사상 최대의 '경영실험' = 회장 - 전략기획실 - 계열사 경영진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삼각편대'는 삼성그룹 70년 역사 중 50년 이상을 이끌어온 핵심 경영 체제였다.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회장과 전략기획실은 세계 일류로 성장한 삼성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데 별 이의가 없다.

여러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강점으로 꼽혀온 삼각편대 경영 체제 중 2개 축인 회장과 전략기획실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삼성 사상 최대의 경영 실험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너의 리더십과 전략기획실의 기능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룹 경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실험의 결과는 한국 재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기아차, 롯데, 한화 등 대부분의 주요 그룹들이 그룹 기획실, 정책조정실 등의 이름으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계열사 경영을 조율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의 경영일선 퇴진, 종합 기획실 폐지가 그룹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열사들의 독립 경영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 사장단협의회 어떻게 운영될까 = 계열사간 협력, 사업조정 등 과거 전략기획실의 기능 일부를 수행하게 될 삼성 계열사 사장단협의회가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도 주목된다.

삼성은 현재 운영중인 계열사 사장단회의의 마지막 회의가 열리는 25일 새로운 기구인 사장단협의회 운영방식에 대해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사장단회의는 그룹 경영관련 사안을 논의하기보다 사장들의 경영환경 이해를 돕는다는 목적 아래 경영 관련 교양과 지식을 습득하고 경영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로 운영됐었다.

가령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의 '원자재값 상승과 향후 전망',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의 '세계 테마파크 현황과 미래' 등의 발제를 듣고 이를 토론하는 식이다.

앞으로 사장단협의회는 이런 지식경영의 장으로 운영되는 것 외에 그룹 공동 경영 관련 사안이나 계열사 사업 조정 등의 업무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비전 설정, 브랜드 홍보 등 그룹 공동 사안이나 계열사 중복투자 조정, 공동출자, 인사 조율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회의 주재는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하기로 한 이수빈 삼성생명회장이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나 사장단협의회 운영을 위해 회장, 간사, 사회자 등을 둘지, 둔다면 누가 맡을지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는 이수빈 회장이 삼성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을 맡고 있긴 하나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맡는 최고 전문 경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 것과 관련이 있다.

결국 삼성은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그룹 차원에서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을 최소한으로 다루고 계열사 독립경영을 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장단협의회가 전략기획실의 축소판으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고 삼성도 이를 경계해 전략기획실 해체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는 입장이다.

◇ 실험 '관전 포인트' =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시작된 삼성의 신경영에 이어 '제2의 신경영'이 될 향후 새 경영체제 운영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경영일선에서 퇴진한 이건희 회장이 대주주로서 오너십을 발휘하는 것을 넘어 그룹 경영에 음성적으로 관여하지 않을 것인지의 문제다.

또 과거 전략기획실이 했던 그룹 경영 조정을 다른 음성적인 기구가 하는 것 아니냐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
삼성은 이에 대해 국민에게 약속했던 경영쇄신안은 지켜질 것이라며 결코 그같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이밖에 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회장 퇴진, 전략기획실 해체라는 새로운 환경에 삼성이 어느 정도 적응하고 중장기적으로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국내외 경쟁회사들과 비교한 경영실적, 이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반영하는 주가 추이 등을 보면 삼성의 새 경영체제의 순항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장기 투자, 연구개발(R&D) 동향, 신제품 개발 추이 등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문경영인이 단기실적 향상에만 급급하고 중장기 먹거리 발굴, 성장잠재력 확충은 등한히 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삼성은 전례없는 경영 실험으로 불확실성, 위험이 커지긴 했으나 지난 30∼40년 동안 변환기를 성공적으로 헤쳐왔다"며 "껍질을 깨는 아픔이 있겠으나 삼성은 경영시스템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