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철 < 금융감독원 부원장 >

위나라 문왕이 중국의 명의(名醫) 편작(扁鵲)을 불러 "자네 집안의 세 형제가 모두 의술에 능하다고 하던데,자네가 생각하기엔 누가 가장 고명한가?"라고 물었다.

편작은 "큰 형님이 가장 뛰어나고 그 다음이 둘째 형님이며 소인이 가장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왕이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네의 명성이 가장 높은 것인가?" 편작이 이렇게 답했다.

"큰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그 원인을 제거해 치료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슨 병을 미리 치료해 화근을 막았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이에 비해 작은 형님은 병이 발생하는 초기에 치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의술을 그저 작은 병을 치료할 만한 정도로만 여깁니다.

이에 비해 저는 병세가 아주 위중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병을 치료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환자에게 침을 놓고 피를 뽑아내며 큰 수술을 하는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의 의술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 금융 시장의 혼란과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인해 한국 경제는 혼란과 어려움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고유가 현상까지 겹치며 수출둔화,내수위축,물가급등 등 '신 3중고' 시대가 닥칠 태세다.

이런 현실은 편작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편작의 3형제 중 큰 형의 의술이 가장 뛰어났던 것처럼 금융 리스크관리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요인이 현실화되기 전에 그 원인을 미리 진단하고 제거하는 '선제적 대응'이다.

현재 실물경기 둔화와 더불어 금융권에서도 여러 분야에 걸쳐 잠재적 위험 요인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의 기업대출과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의 급격한 증가,대출재원 확보를 위한 양도성예금증서(CD) 및 은행채의 과다발행,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화 우려 등이 그 사례다.

최근에는 금융공학과 신종금융기법의 발달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뿐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복잡하고 다양한 위험이 내재된 금융거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내 금융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위험요인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우려된다.

환 헤지를 위한 상품으로 설계됐지만 최근 환율 급등으로 피해가 커지고 있는 'KIKO(Knock-In,Knock-out)' 등 장외 통화옵션 상품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발생하는 위험요인을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금융회사는 시장점유율이나 외형규모 확대를 리스크관리보다 중요시하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중요한 의사 결정은 아직까지도 마케팅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선제적 대응이라는 리스크관리의 대원칙이 급격한 변화와 불확실성의 기로에 선 국내 금융회사의 생존을 좌우하게 될 시대가 머지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 금융감독기구에서도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 등에 대한 감독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감독기구와 금융회사 간 협의채널을 마련하고 정보공유를 강화해 리스크를 조기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감독체계의 구축을 위한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오는 16일부터 서울에서 5일간 열리는 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IAIS) 정례회의 및 글로벌 세미나는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감독기구 간 공조는 물론 국내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선제적인 대응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