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들이 기업의 퇴직연금을 유치하기 위해 고금리 확정이율을 제시하거나 수수료를 대폭 할인하는 등 제살 깎아 먹기 경쟁에 나서면서 퇴직연금 시장이 과열ㆍ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은 정체됐는데 업계의 과당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퇴직연금 사업을 중단하는 금융회사도 나오고 있다.

10일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퇴직연금 사업자(퇴직연금을 운영하는 금융회사) 선정 입찰에 은행 보험 증권사 등 금융권역별로 5개사씩 모두 15개 금융사가 뛰어들었다.

입찰에 참가한 15개사 중 5개사는 "퇴직시까지 매년 연 7% 이상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보장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현재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5~6%인데 만기까지 연 7%의 확정금리를 보장하겠다고 제시하는 것은 명백한 출혈"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사들이 이런 식으로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고금리 제시 경쟁에 나서면 나중에 그 부담을 고스란히 금융사가 떠안아야 하고 결국에는 퇴직연금 사업의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수료 인하 경쟁도 치열하다.

한 관계자는 "사업자들은 적립금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1% 안팎의 운용수수료를 받는데 최근 경쟁이 과열되면서 0.5% 이하의 수수료를 제시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운용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나 인력 관리 등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일단 '계약을 따고 보자'는 식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각 금융사들이 제시한 최저 보장 수익률과 수수료 등 두 가지 조건을 따져 최종 세 곳을 선정했다.

이에 대해 금융계는 이번 농수산물유통공사의 퇴직연금 사업자 입찰이 향후 다른 공기업이나 일반 기업들의 사업자 선정에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자산운용의 전문성과 안정성 등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금리입찰만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풍토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연금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단순히 수익률만 따지지 않고 운용의 전문성과 안정성,퇴직연금 서비스 및 컨설팅 능력 등 여러 가지 세부 항목을 놓고 심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퇴직연금 경쟁이 치열해지자 지난달 골든브릿지증권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퇴직연금 사업을 중단했다.

골든브릿지증권은 1억6000만원 규모의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어 가입자 피해가 우려된다.

금융위는 골든브릿지증권에 퇴직연금을 맡긴 가입자들이 피해 없이 다른 금융회사로 이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 중이다.

국내에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2년이 넘었지만 기업들의 가입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지난 4월 말 퇴직연금 가입 기업은 모두 3만7397개사이며 이들이 맡긴 적립금은 3조3773억원이다.

당초 예상치 30조원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시장의 발전이 더디자 적립금 운용 규모가 100억원 미만인 영세 사업자가 19개로 전체 48개 사업자의 40%에 이르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현재 거의 모든 퇴직연금 사업자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퇴직연금 규모라면 10개 정도의 사업자로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진모/정인설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