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고유가 극복 민생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은 급등하고 있는 국제유가로 인해 위급해진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슬기롭게 극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경제적 상황 뿐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민생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상당 기간 실종됐고 새 국회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더 이상 민생 경제를 방치할 경우 견실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 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오일쇼크에 근접..특단 대책 필요

최근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최근 종가 기준으로 138.54 달러를 기록, 140 달러에 육박하며 최고가를 갈아 치우는 등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급등세를 보였다.

유가에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유가는 최근 137.5달러로 1980년 4월의 2차 오일쇼크 당시의 104.1 달러보다 높고 에너지 효율성까지 감안한 실질실효유가는 최근이 137.5 달러로 2차 오일쇼크의 150.2 달러 수준에 빠른 속도로 근접하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이 2차 오일쇼크 당시와 비슷한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세계경제는 10년의 호황을 마무리하고 침체 국면으로 진입했고 국내 경제도 내수 부진, 물가 상승, 소득 정체 등으로 여려운 상황을 맞았으며 특히 저소득.취약계층의 고통은 가중돼 왔다.

지표를 떠나 생계형 운전자들과 어민들은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못해 운행이나 출어를 아예 포기하고있으며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입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비명이 터져나고 있다.

◇ 자영업자.대중교통.농어민등에 10조 지원

정부는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고유가로 피해를 보는 근로자.자영업자.저소득.장애인.농어민 등의 계층을 선별해 집중 지원 하면서 장기적으로는 규제 완화, 감세, 투자 활성화 등 일자리 창출과 성장 동력 확충을 통해 우리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로 다시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추가적인 유류세 인하 조치는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170달러를 도달할 경우 검토하겠다며 일단 보류했다.

이미 한 차례 유류세 인하를 했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하면 효과가 없어지고 세수만 줄어들어 피해 계층에 대한 선별적.집중적 지원으로 대책의 방향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우선 유가 환급금 지원의 경우 근로자는 총급여 3천600만원 이하, 자영업자는 종합소득금액 2천400만원 이하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고 유가 환급금은 버스(시내.시외.고속.마을버스), 화물차, 연안화물선 등 대중교통.물류 분야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생계형이 많은 1t 이하 자기 화물차에 대해서는 경승용차.경승합차와 같이 유류세를 환급해주기로 했으며 농어민에 대해서도 유가 상승분의 50%에 해당하는 유가 환급금을 주기로 했다.

기초생활수급자(86만 가구)와 차상위계층 중 중증 장애인(3만 가구)도 유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했고 저소득층에 대한 연탄 보조 대상으로 기초생활가구에서 차상위 가구까지 확대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위해 재정 지출 3조4천360억원, 유가 환급 7조570억원 등 총 10조4천93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 비용왜곡 구조 개선..아끼는 시스템 정착

정부는 직접적인 지원의 효과는 한시적인 만큼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이 경제 주체 간에 왜곡되지 않게 하고 사회 전반을 에너지 절약구조로 전환하는 방안도 대책에 담았다.

대기업들이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을 납품 또는 하도급 중소기업에 전가시키지 않도록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적기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화물거래 관행 개선을 위해 화물운송정보망 구축 등 구조개혁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합리적인 표준운임제를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연료비 비중이 높은 쌍끌이, 채낚기낚시 어선 등을 중심으로 감척사업을 확대하는 등 경쟁력 없이 고비용만 초래하는 부분을 구조조정하고 주유소 상표표시제 폐지, 정유사.주유소 간 배타적 공급 계약 제한, 수입개방 확대 등 석유제품 시장의 유통구조를 개선, 가격이 왜곡되지 않도록 했다.

서울시.수도권 간 광역버스에도 통합환승할인운임제 시행, 서울시.수도권 간 출퇴근 시간을 대폭 단축하기 위한 광역급행버스 면허제도 도입 등 자가운전자를 대중교통으로 흡수하기 위해 대중교통의 편의성을 높이기로 했다.

전기.가스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전기.가스 요금이나 지방의 버스.지하철 요금을 안정을 유도해 공공요금 인상도 억제하기로 했다.

아울러 압축천연가스(CNG) 버스 확대, 공공기관 10% 에너지 절감,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세액공제확대, 신재생 에너지 설비자금 확대 등 에너지 절약구조로의 전환과 함께 유전개발 융자확대, 자원개발펀드 조성, 해외자원개발 지원 등 에너지 자원 확보 대책도 병행하기로 했다.

◇ 전문가 "방향은 바람직"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류세 감면이 아닌 재정지원을 통해 대책을 마련한데 대해 방향은 바람직하고 최소한의 기대 효과를 예상할 수 있지만 지원 대상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소비진작 효과 등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환급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정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나은 대책으로 평가한다"며 "유류세 인하는 두바이유가 170달러로 급등하는 시점으로 한 것은 올해 중으로는 세금 인하를 검토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적절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유가가 오르면 국내 유가도 오르면서 수요가 줄어야 하는데 세금을 인하하면 가격구조가 왜곡되게 된다.

지금까지 중국을 비롯한 신흥 국가들이 보조금 정책을 취했는데 이들 국가도 결국은 국제 유가에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근로자, 자영업자에게 연간 24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을 감안할 때 웬만한 가정으로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금액"이라고 평가했지만 "다만 실제 집행을 하는데 있어 지원 대상 선정을 놓고 잡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재정을 활용해 지원하겠다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면서도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광범위하게 지원하겠다는 것인지가 문제다.

만약 물가가 급등한 부문에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면 이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클 테고 광범위한 지원을 한다면 전체적으로 소비심리를 진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책을 보면 지원 대상을 골고루 설정하는 한편 사업용 차량지원, 공공요금 동결 등을 위해 많은 지원금을 배정했다"며 "연 24만원을 지원한다고 해서 소비진작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고 공공요금 동결 등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억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원 기자 lee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