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출판사와 음반사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책도 음반도 도대체 팔리지가 않았다.

월드컵 때문이었다.

책이나 음반과는 경쟁이 된다고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복병을 만났던 것이다.

경쟁이 이처럼 업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기업 경영에는 리스크가 점점 더 커져간다.

비슷한 일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다.

연일 시위가 계속되면서 책도 안 팔리고 음반도 안 나가고 택시영업도 술장사도 안 된다.

월드컵 때와 다른 점은 외부적 상황과 겹치면서 불안감이 더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고유가 고원자재값 고환율 고물가 행진이 계속되고 있고 어느 것 하나 단기적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기업은 환경적응업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변화의 본질을 빨리 파악하고 기회를 활용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쇠고기 정국에서도 기업은 분명 배울 것이 있다.

바로 새로 나타난 소비자 집단의 특성이다.

많은 이들이 정부가 이번 촛불집회에 아마추어적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하지만 경험 많은 관료들이 대응했다면 달랐을까? 결과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초기에 이 집회가 이 정도로까지 확대될 줄은 참가자 자신들도 잘 몰랐던 것 아닌가.

인터넷이라는 다원화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짐작조차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촛불집회는 네트워킹의 힘과 새로운 소비자 파워를 그대로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인터넷은 항시 연결을 위해 일방통신이 아니라 다원화 소통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하나의 '방송국'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방송국'들이 전파를 쏘면 되는 식이다.

촛불집회가 이렇게 인터넷을 닮은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후'가 있다고 하기도,없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참여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방향만 짐작할 뿐 결과가 어찌될지는 알 도리가 없다.

일방향,쌍방향을 넘어 다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위험한' 시위현장에 아이들이 나오고, 할머니가 등장하고,가족들이 '소풍'을 오는 현상은 다원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치권도, 노동계도 오히려 뒷차를 탔을 뿐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에너지 덩어리가 바로 새로운 소비자집단이다.

방향은 순간순간의 사건과 이벤트가 결정한다.

이런 집단은 감성적이다.

집단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개인의 개성을 죽이지는 않는다.

이벤트에 열광하고 때로는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의미를 찾는다.

이들을 묶는 한마디가 바로 다원화 네트워크다.

이것이 백화점이나 상가 대신 인터넷 쇼핑몰과 직거래 사이트, 경매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주류 고객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박'상품, 스타 혹은 '집단 왕따'도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런 집단을 상대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솔직함이요,투명경영이다.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진심이다.

정부가 새롭게 나타난 이 국민들을 상대할 때 잊어서는 안되는 대목이요, 기업들이 업데이트해야 할 고객들의 새로운 신상명세다.

새로운 기회는 불안정함 속에 숨어있기도 하는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