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 >

정국은 대혼돈이다.

외환 위기를 목전에 두었던 97년의 재연이다.

원래 큰 파도가 덮쳐오기 전에 작은 배는 내부를 먼저 뒤집는 법이다.

흔들리는 뱃머리에서 다투어 일어서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지금이 그 꼴이다.

반정부시위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참여정부 농림부의 거짓과 사기극,그리고 터무니없는 좌파 선전 매체들의 선전전이 누적된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연일 청와대로 치닫는 시민들 중 정말로 미국 쇠고기에 대한 히스테리로 떨쳐 일어난 사람은 많지 않다.

대통령을 비아냥거리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이후의 국민적 취미가 되고 말았다.

지식인들은 더욱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고….대통령의 인기가 급기야 10%대로 떨어졌다는 조사까지 나왔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허수였을 뿐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1 대 1 대항전에서 중간에 위치한 후보자는 언제나 절대 강자라는 것이 소위 중간투표자의 정리다.

5개의 선택지에서 중간투표자는 언제나 좌우에서 표를 모아 최강의 결과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지난 선거가 바로 그것의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과 결별하고 열린당을 만들고자 했을 때 그의 비극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라는 한나라당의 본질을 희석시키고자 했을 때 같은 운명적 비극을 맞았다.

노무현을 뽑았는데 정작 정체 모를 386들이 대거 등장했을 때, 이명박을 찍었는데 온갖 이력서만 아름다운 기회주의 정책기획가들이 우르르 청와대와 내각을 점령했던 바로 그때 이명박 대통령을 싸고 있던 중간 투표자들은 모두 떠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좌파 매체들이 연일 허위의 과장 보도를 해댈 때도 정말 죽기로 싸워보자고 나섰던 참모는 없었던 것이다.

중간 투표자가 가졌던 거대한 허수(虛數)가 공중분해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였다.

좌파들이 무대 중앙으로 돌진해 들어온 것은 전통 지지층이 일제히 지지를 철회한 바로 그때였다.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태를 즐기고 있는 것이 좌파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지를 거둔 우파들도 다를 것이 없다.

소줏잔을 들이키며, 그리고 이죽거리면서 '잔인한 자기학대'를 감당하고 있는 것은 거리의 좌파도, 촛불을 든 철없는 애들도 아니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죽을 고생하며 정권을 되찾으려 했던 우파들이다.

사랑이 변하면 더욱 깊은 증오가 되고만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명박 대통령을 지켜줄 세력은 민주주의와 시장과 자유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실용 정부'라는 고약한 이름이 장차 모골이 송연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은 필자가 지난 1월1일자 이 칼럼에서 썼던 그대로 실현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실용이라는 말을 제안했던 참모들부터 잘라내기 바란다.

빈약한 역사의식을 실용이라는 단어로 가리려고 했던 참모가 바로 독(毒)이요 무지의 출발이다.

박근혜 고사 전략을 진언했던 책사들도 내치는 것이 좋다.

아니,국민들이 총선에서 내친 것을 대통령이 다시 끌어안았던 것이다.

오류 중의 오류요, 실책 중의 실책이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어설픈 타협과 얄팍한 중용은 더 큰 화를 초래할 뿐이다.

좌파들도 그만하면 족한 줄 알고 이제는 좌판을 거두는 것이 좋다.

오버하면 필시 다시 죽게 될 것이다. 쇠고기를 빌미로 대선 결과를 뒤집고 애들을 선동해 10년 좌파 향수로 회귀하려는 어떤 시도도 탄핵의 그때처럼 결국 반전과 역풍을 부른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쇠고기 시위 자체가 거짓과 선동과 허위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을 국민들이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촛불 또한 허망하게 꺼질 것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