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버스에 몸을 실은 지 한 시간여 만에 도착한 톨레도는 온통 황톳빛이다.

중심부에 솟아 있는 톨레도 대성당과 알카사르 성,그리고 그 주위를 빼곡하게 메운 집이나 상점들이 모두 비슷한 색깔이라 멀리서 보면 전체가 한 빛깔을 띠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타임캡슐 속에 갇혀 있던 중세의 도시가 시간을 거슬러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것 같다.

마드리드가 현대적 이미지의 도시라면 톨레도는 중세적 이미지로 충만한 도시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배경으로 삼은 카스티야 라만차 지방이 바로 이 톨레도 일대다.

총포의 보급으로 성곽과 기사의 몰락이 이미 시작된 시대에 돈키호테가 애마 로시난테를 몰고 중세적 기사도 정신이라는 '낭만적 착각' 속으로 한없이 빠져든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나도 돈키호테가 되볼까' 하는 기분으로 톨레도에 발을 내딛는다.

첫 번째 행선지는 톨레도 대성당.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인 이 성당은 1226년 착공해 완공까지 266년이나 걸린 대역사였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과연 공사를 끝마칠 수나 있었을까 싶다.

신에게 다가가고 싶은 열망이 그토록 크고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성당 내부는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분위기인데 곳곳에 회화 조각 장식 등 예술 작품이 망라돼 있어 어두움 속에서도 화려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성당 안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가져왔다는 황금도 전시돼 있다.

대항해 시대에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앞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가 무적함대의 몰락과 함께 패권을 잃어버린 옛 스페인 제국의 영욕이 그 황금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하다.

성당을 나서 엘 그레코의 '오르가르스 백작의 매장'을 보기 위해 산토토메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톨레도에 와서 엘 그레코를 보지 않고 떠나면 안 된다는 게 여행 가이드의 말이다.

산토토메로 향하던 중 주변 풍경을 사진기에 담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길을 잃고 말았다.

톨레도에서 길을 잃은 것은 행운이었다.

톨레도 여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골목길을 헤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니 말이다.

'톨레도에선 누구나 길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톨레도 시내에 2000개가 넘는 골목길이 퍼져 있어 이방인이 한번에 길을 찾기란 힘들다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로인 셈이다.

하지만 이 미로는 여행자를 난처하게 만드는 고약한 미로가 아니다.

길 양 옆에 늘어선 전통 공예품이나 아기자기하고 예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북적이며 만들어내는 묘한 흥분이 여행자의 눈과 귀를 들뜨게 하는 즐거운 미로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버리는 게 낫다.

괜히 머릿속만 복잡해질테니까.

어느 가게든 불쑥 들어가 현지인들에게 길을 묻는 게 상책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지레짐작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간단한 의사표현과 적당한 '보디 랭귀지'면 충분하다.

여행자의 미덕은 낯선 것을 피하는 게 아니라 부딪치면서 현지의 삶에 다가서는 것 아닐까.

그렇게 길을 헤메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이 도시가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멀리서 보는 풍경이 아니라 내 발로 걸으면서 읽어낸 풍경이기 때문이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길을 헤매고 싶은,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다.

걷다 지치면 아무 노천카페나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앉아서 쉬면 그만이다.

그레코의 그림이 있다는 산토토메 성당은 건축학적으로는 그저그런 평범한 건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엘 그레코의 이 그림 하나로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블록버스터 성당'이 됐다.

20세기 그리스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할머니,엘 그레코가 어떤 사람이죠?"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만든 사람이지!"

나는 그 할머니에게 만일 진실대로 말해준다면 커피와 설탕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할머니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할머니는 누런 볼이 발그레지더니,자신있게 내게 속삭였다.

"그는 미국 사람들을 데려온 사람이야."(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 중)

엘 그레코는 원래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이다.

그레코란 이름은 바로 '그리스인'이란 뜻이다.

본명(도메니코 테오코폴로스)은 따로 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그리스어 발음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냥 그레코로 불렀다고 한다.

그는 35세 때 우연히 톨레도에 왔다가 이 곳에 홀딱 반해 이후 평생을 톨레도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자기 이름 하나 제대로 안 불러주는 도시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는지….

엘 그레코는 당대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현재는 '피카소의 뿌리'로 평가받을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땅에 깊이 뿌리박고 사는 톨레도 사람들에게 엘 그레코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관광객을 의미하는 '미국 사람들'과 함께 물질적 번영을 가져왔기 때문일 뿐이다.

산토토메 성당 밖에 길게 늘어선 관광객들을 보면서 스페인 사람들도 '그 할머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묻고 싶다.

또 하나.

그림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오르가르스 백작의 장례식에 참석한 당대 톨레도 명사들의 대열 속에 엘 그레코 자신과 자신의 아들 얼굴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카메오 출연'인데 엘 그레코는 '자기 과시'가 강한 사람었는지,아니면 '유머 감각'이 풍부한 사람이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림 속의 어떤 인물이 그레코인지 먼저 '찍어보고' 나중에 정답 확인차 안내원에게 물어보는 것도 그림을 감상하는 색다른 재미다.

산토토메를 나와 알칸타라 다리를 건넌다.

톨레도 전경이 한 눈에 보인다는 고갯마루로 가기 위해서다.

톨레도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기원전 2세기 로마가 이 곳을 처음 정복했는데 당시 다른 어느 지역보다 저항이 거셌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이 곳을 '참고 견디어 항복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톨레라툼'(Toleratum)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톨레도(Toledo)란 지금의 이름은 물론 여기서 유래했다.

이후 5세기에 서고트족이 이베리아 반도의 새 지배자로 부상하면서 톨레도를 수도로 하는 서고트왕국을 세웠다.

711년 이슬람세력이 서고트왕국을 멸망시켰고 1085년에는 가톨릭세력이 이슬람을 몰아내면서 이 곳을 장악했다.

근현대에 들어서도 스페인 내전(1930년대) 당시 파시스트 세력인 프랑코 총통군과 자유주의자ㆍ사회주의자 등의 연합인 인민전선 측이 알카사르성 일대를 중심으로 치열한 교전을 치렀다고 한다.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톨레도는 고요하고 평온하기 그지 없다.

과거 톨레도를 '천혜의 요새'로 만들었던,거대한 해자처럼 도시를 휘감아 돌고 있는 타호강과 강 기슭에 힐끔힐끔 보이는 성곽들도 지금은 나른한 오후 햇살 속에 반짝반짝 빛나며 여행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을 뿐이다.

숱한 전쟁과 왕조의 흥망성쇠,동족끼리 서로 총을 겨눈 비극을 뒤로한 채 고요하고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화 같은 도시가 바로 그 곳에 놓여 있다.

톨레도(스페인)=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