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소비심리 28년만에 최악…쇼핑 풍속도 바뀐다
#장면1: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인근 라운드록에 있는 월마트 매장.한손에 구매 품목을 적은 쪽지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 쇼핑 카트를 미는 고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대공황이 터진 1930년대 소비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주부들 사이에 유행했던 '쇼핑 리스트'가 부활한 것이다.

#장면2:워싱턴DC에 살던 제프 존스씨(25)는 최근 6년간의 독립 생활을 접고 인근 버지니아주의 부모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늘어나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미국판 '캥거루족'의 탄생이다.

19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경기침체기를 맞아 미국에서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아메리카리서치그룹(ARG)에 따르면 할인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미국 여성 중 59%가 쇼핑 전 구매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이 터지기 전만 해도 여성의 3분의 1가량만 쇼핑 리스트를 애용했으나 작년 10월부터 늘기 시작,이달 조사에서는 10명 중 6명꼴로 쇼핑 리스트를 애용한다고 답했다.

쇼핑 리스트 이용 고객이 늘면서 대형 할인점에 사람이 몰리고 있다.

월마트의 지난 1분기 매출은 941억달러로 1년 전보다 10.2% 증가했다.

온라인 쿠폰의 인기도 부활하고 있다.

인터넷 트래픽 조사업체인 컴스코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온라인 쿠폰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의 총 클릭 건수는 지난 3월 2억8100만건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나 늘었다.

같은 달 전체 인터넷 사이트 클릭 건수가 5% 늘어나는 데 그친 걸 감안하면 큰 폭의 증가세다.

경기가 안 좋은 데다 물가도 치솟으면서 쿠폰을 활용해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알뜰 소비족'이 늘어난 것이다.

미시간대학이 최근 발표한 5월 소비자신뢰지수는 59.5로 전달 62.6을 훨씬 밑돌았다.

미국인들의 소비심리가 1980년 6월 이후 28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한 것이다.

소비자신뢰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하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풍요로움 속에 성장한 X,Y세대들도 주머니 사정이 어렵게 되자 가족에게 손을 벌리는 등 궁핍함 속에서 살아나가는 지혜를 터득해나가고 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친구와 합치거나 부모 품으로 들어가는 20,30대 젊은이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패션시장도 판매가 줄어드는 가운데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시장조사업체인 NPD그룹은 2∼3월 여성의류 판매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가량 감소했다고 밝혔다.

특히 외투와 잠옷,장신구 등의 감소 폭이 컸다.

컨설팅업체 WSL전략유통 소속의 웬디 리브만 컨설턴트는 "경기침체 상황에서 사람들은 새 옷을 사는 대신 옷장을 더 뒤지는 쪽을 택한다"고 들려줬다.

'제이크루' '코치' 등의 의류업체들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진짜 멋쟁이'들을 겨냥한 상품을 내놓는 전략을 펴고 있다.

코치의 루 프랭크퍼트 최고경영자(CEO)는 "불경기 때는 좀 더 꼼꼼하게 지출하기 때문에 구매 빈도를 낮추는 대신 좋은 제품을 사려는 여성도 많다"고 지적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유병연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