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카락스, 미셸 공드리 감독과 옴니버스 영화 만들어

15일(현지시간) 시사회를 연 뒤 16일 하루 종일 30여 차례 인터뷰를 가져 정신이 없다면서도, 한국말을 하게 되니 편하다고 하면서 영화 이야기를 줄줄 풀어놓았다.

16일 오후 제61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2006년 '괴물'이 감독 주간에 초대돼 칸에 왔던 봉감독은 이번에 프랑스 레오 카락스와 미셸 공드리 감독과 함께 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 올라 또 한 번 칸을 찾았다.

프랑스 꼼데시네마의 제안으로 일본의 비터즈 엔드와 한국의 스폰지가 공동제작사로 참여한 이 영화는 레오 카락스의 '광인', 미셸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로 구성됐됐다.

영화의 반응은 썩 좋다.

10년 만에 연출한 레오 카락스와 미셸 공드리의 모국인 프랑스 언론 뿐 아니라 버라이어티 데일리, 메트로 등도 후한 평을 썼다.

버라이어티 데일리는 봉감독에 대해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한국의 가장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이"로 칭찬하면서 "봉준호와 촬영감독인 후쿠모토 준은 대도시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립감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표현해냈으며 '흔들리는 도쿄'는 흥미를 자극하는 세 가지 식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랑스러운 샤베트였다"는 호평을 보냈다.

'흔들리는 도쿄'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를 소재로 했다.

10년 째 집밖을 나간 적이 없는 한 남자(카가와 테루유키)가 피자를 배달하는 여자(아오이 유우)에게 관심을 두면서 벌어지는 변화를 그린 영화. 대도시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인간을 창조적인 공간 배치와 탁월하게 매만진 빛으로 표현해냈다.

다음은 봉준호 감독과의 일문일답.

--어제(15일) 시사회 후 반응이 느껴지나.

▲아직까지 리뷰는 못봤는데 상영 직후 '뷰티풀'이라는 형용사가 나왔다.

세계 각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들로부터 '평소 네 영화랑 다른데 좋았다' ''괴물' 때는 큰 스케일의 영화를 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작은 영화를 했느냐. 독특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괴물'은 본의아니게 여러가지로 확장된 영화였을 뿐 기본적으로 난 사람이든 공간이든 현미경으로 찍는 듯한 것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언제 이 프로젝트의 제안을 받았나.

▲2006년초 '괴물' 후반작업할 때였다.

프랑스의 꼼데시네마에서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을 재미있게 봤다며 연락왔다.

'괴물'로 칸에서 왔을 때 제작자들 만났다.

'사랑해, 파리' 등 도시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영화가 소개될 즈음이었는데 꼼데시네마의 대표가 일본계 프랑스인인 마사 사와다 씨여서 도쿄를 내건 듯 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뭔가.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살인의 추억' 끝나고 전주영화제에 출품된 '디지털 삼인삼색'을 만들기도 했는데 장편 사이에 단편을 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디렉팅하는 경험을 갖고 싶었다.

난 원래 대사의 아주 미묘한 뉘앙스로 배우랑 싸우는 걸 좋아하는데 이걸 외국어로 외국 배우와 싸우면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미국, 일본 등에서 연출 제안을 받긴 했지만 시스템이 차이가 있어 겁내하며 선뜻 하지 못했다.

그런데 30분 짜리니까 부담이 없을 테니 수락하자고 생각했다.

혈혈단신 내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스태프와 배우에 둘러싸여 이방인으로서 일했다.

--영화에서 햇빛이 굉장히 중요했다.

빛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했다고 할 정도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햇빛에 관한 게 자세히 설명돼있을 정도로 조명을 중요하게 여겼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나온 그 빛은 모두 인공광이다.

집 전체를 포장마차치듯 둘러싸 자연광을 다 막은 채 인공광을 섬세하게 쏘아댔다.

일본 다다미에 다가서는 빛의 미묘함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빛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너무 좋아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콤비를 이뤘던 이치가와 감독과 일하고 싶었고, 그가 '러브레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찍은 일본 촬영감독의 대가 시노다 노보루의 수제자인 후쿠모토 준을 연결해줬다.

--도쿄라는 도시에 대한 느낌은 무엇이었나.

▲난 공간적인 느낌에서 출발하는 것을 좋아한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괴물'은 한강이 배경이었듯.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공간보다는 도쿄 사람들에 대한 인상에서 출발했다.

일본 사람들을 보면 한국과는 다르게 밥을 혼자 먹는 경우 많다.

심지어 벽을 보고 밥을 먹을 정도다.

벽을 보고 외롭게 앉아 먹는 모습, 편의점에서 사람들의 느낌을 그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도쿄가 썰렁한 도시냐면 그것도 아니다.

터져 나갈 정도로 인구가 많은데 지하철 같은 혼잡한 곳에서 다른 사람과 닿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의 느낌도 있다.

강박증으로 느껴질 정도다.

--히키코모리를 소재로 한 이유는.
▲그런 외로움, 고립감의 극단이 히키코모리다.

히키코모리에게 어떤 일이 제일 황당할까,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켰다.

요즘엔 기술의 발달로 배달을 시키고 메신저로 세상과 소통하며 집안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유일하게 안되는 게 사람과의 물리적 접촉이고 그로인한 사랑이다.

카가와가 아오이의 몸에 새긴 문신 버튼을 누르는 걸 엄청난 섹스신이라 생각했다.

그 접촉의 충격 때문에 남자가 드디어 현관문을 열게 된다.

그런 식으로 스토리가 발전해갔다.

--세트가 굉장히 정교하다.

▲제작비 때문에 세트를 못짓고 쿠가야마라는 중산층 동네에 있는 사택에서 찍었다.

그 집을 발견한 게 행운이다.

그곳의 구조가 독특했다.

복도 끝에 화장실이 있고, 방과 복도가 이상하게 통했다.

다행히 그 집에서만 찍을 수 있는 장면이 나왔다.

--첫 장면에서 손바닥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꾹 눌러 동그라미를 만들고, 둥그런 생수병이나 화장지가 쌓여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기하학적이기도 하고.
▲동그라미가 중요한 모티브였다.

'괴물' 마지막 장면에 송강호가 괴물을 찔러죽이고 나서 손바닥에 동그라미 흔적이 남아있는 손바닥을 쳐다봤는데. '괴물'의 끝이 '흔들리는 도쿄'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

하하. 동그라미는 히키코모리만의 독특한 시간 개념이다.

11년간 히키코모리였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에게 시간 개념은 다른 것 같았다.

1년이 하루같을 수도, 하루가 1년 같을 수도 있다.

--상당히 비극적인 장면인데 웃음이 나온 장면이 있다.

남자가 10년 만에 집밖으로 나와보니 도쿄 시민 전체가 히키코모리가 돼있었다.

그러다 지진이 나니까 살려고 집밖으로 나온 장면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바퀴벌레를 생각했다.

몰려 나왔다가 뿔뿔이 사라지는. 아주 중요한 이미지였다.

서로가 서로를 뻘쭘하게 마주 하다 뒷걸음질치며 사라진다.

자원봉사자였던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그 개념을 쉽게 이해해줘서 역시 일본이라서 그런가 생각했다.

--다른 감독의 영화를 본 소감은.
▲어제 스크리닝 행사에서 다른 감독이 만든 걸 처음 봤다.

정말 독립적으로 진행된 작업이었다.

레오 카락스가 10년 만에 작품을 내놓는 것이니 프랑스에서 관심도 지대했는데 너무나 폭발력을 지닌 작품을 내놓았다.

미셸 공드리 역시 이름이 그래서인지 공들여 찍었더라. 아이쿠, 농담치곤 너무 썰렁하다.

어쨌든 단편 옴니버스임에도 세 명 모두 공들여서 열심히 찍었다는 게 느껴져 좋았다.

--외국어로 디렉팅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는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 연출 제안이 온다면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미세한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

'마더' 이후 찍을 '설국열차'에 미국, 유럽, 아시아 배우가 뒤섞이고 대사도 뒤섞일 텐데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로 표현되는 감정의 뉘앙스는 만국 공통이더라.
--만약 서울을 주제로 옴니버스 영화를 찍는다면 프로듀서로서 어떤 감독을 기용할 것인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우리랑 비슷한 핫 벨트에 있는 나라의 감독 말고,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와 같은 쿨 벨트에 있는 국가 출신 감독이 와서 서울을 관찰하고 찍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다이내믹한 서울에서 벌어지는 순간순간의 상황들이 그들의 눈에는 초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칸<프랑스>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