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 목적으로 KIKO라는 통화옵션 계약을 체결한 기업들이 거꾸로 엄청난 환손실을 입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속출하면서 파생상품의 위험성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파생상품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레버리지,투기,고위험,시장교란,서브프라임모기지,헤지펀드,패가망신 등등…. 이쯤 되면 '파생상품=악(惡) 또는 괴물'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다.

그런데도 파생상품은 없어지기는커녕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있다.

당장 증권선물거래소가 이달부터 15개 개별 주식에 대한 선물거래를 시작했고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장내ㆍ장외 파생상품이 거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파생상품이 갖고 있는 장점 때문이다.

파생상품은 상대적으로 적은 헤지 비용으로 각종 거래에 따르게 마련인 불확실성과 위험을 완화하거나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단순한 헤지 목적으로만 활용하면 큰 위험이 없지만 적은 비용으로 큰 규모의 거래가 가능한 소위 레버리지를 이용해 투기적으로 거래할 경우 대박과 쪽박을 오가는 도박판으로 변질된다.

파생상품이 오명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KIKO 옵션도 속내를 들여다 보면 헤지라고 보기 어려운, 다분히 투기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기업들은 '돈은 거의 들이지 않고 헤지할 수 있다'는 은행의 제의에 솔깃해 최소한의 헤지 비용마저 아끼려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위험에 노출되고 말았다.

투기적 거래로 낭패를 본 것은 기업뿐이 아니다.

코스피200 지수선물ㆍ옵션에 투자한 개인의 약 95%가 손실을 봤고 대부분이 거래를 시작한 지 3개월도 안 돼 소위 '깡통'을 찬다고 한다.

그렇다고 파생상품 거래를 무조건 막고 규제만 할 수도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도 고도로 복잡한 금융기법의 핵심을 이루는 파생상품 관련 연구와 개발은 오히려 더 장려돼야 한다.

대신 금융당국은 제2의 KIKO 사태를 막기 위해 '감독의 사각지대'처럼 돼 있던 파생상품 관련법과 규정을 총점검,투자자보호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손질해야 한다.

특히 KIKO처럼 상대적으로 감독이 허술할 수밖에 없는 장외파생상품에 대해서는 거래규모나 한도 등을 상대방에 따라 차별화하는 등 합리적 범위에서 투자위험을 줄이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같은 맥락에서 금융투자회사의 장외파생상품 취급 자격및 기준을 대폭 완화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은 투자자보호 차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크다.

주가지수 선물ㆍ옵션 마감지수 결정방식을 비롯 개인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는 관련 제도 역시 차제에 개선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울러 자통법과 금감원 규정 등에 분산되어 있는 파생상품 관련 감독체계를 일원화하는 작업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파생상품은 잘 쓰면 보도(寶刀), 잘못 쓰면 흉기가 되는 칼과도 같다고 한다.

파생상품이 흉기가 되지 않도록 투자자보호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