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에너지광물부의 펠리페 이사시 차관(광물담당) 집무실 앞.이사시 차관을 만나려고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자원개발 사업가들로 북적댔다.

기자에게 배정된 차관 면담시간은 30분.하지만 당초 만나기로 한 시간이 20분이나 지나서야 방문이 열리더니 5~6명의 중국인들이 웃음을 지으며 몰려나왔다.

"미안합니다.동광 개발을 추진하는 중국 기업 쪽에서 너무 질문이 많아서….요즘에는 수시로 저렇게 일본과 중국에서 기업인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이사시 차관)

'잉카의 자원부국' 페루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자원전쟁의 일면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페루에서의 자원확보 싸움에는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자원에 목마른 중국,인도 등 신흥 개발국까지 가세해 가히 3차 세계대전이라 부를 만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엄청난 잠재력,자원민족주의 무풍지대

페루가 열강들의 자원개발 각축장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풍부한 광물자원 때문이다.

페루의 동 아연 금 은 주석 등 주요 광종 매장량이 하나 같이 세계 10위권 이내다.

안료ㆍ화장품 원료인 창연(비스무트)이 세계 2위이고,금ㆍ은ㆍ주석은 각기 세계 3위다.

지난해 생산량 면에서도 은이 세계 1위였고 아연이 2위,동ㆍ주석ㆍ창연이 각각 3위를 기록했다.

페루는 이런 광물로 전체 수출액의 60%를 거둬들이고 있다.

박강욱 KOTRA 리마지사 차장(45)은 "페루의 광물 생산량이 엄청나지만 전체 매장량의 10%만 탐사됐고 이 가운데 1%만 생산하고 있다"며 "페루의 광물자원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남미 대륙을 휩쓸고 있는 자원민족주의ㆍ자원포퓰리즘 태풍에서 비켜나 있는 것도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윌프레도 살라나스 페루국립공대 교수는 "페루는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남미국가 중 하나"라며 "풍부한 자원을 페루 혼자 모두 캐낼 수 없기 때문에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계 180여 업체,'노다지' 탐사 중

현재 페루에서는 각국에서 진출한 180여개사가 300여개 광산에서 광물 '노다지' 탐사를 벌이고 있다.

대한광업진흥공사 리마지사의 류민걸 과장(40)은 "현재 페루에는 뉴아메리칸,리오틴토,BHP빌리턴 같은 광업 메이저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땅 좀 파봤다는 사람은 모두 온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자원외교를 강화 중인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로비를 바탕으로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는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페루 광물자원 개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LS니꼬가 지난해 리오블랑코 동광산을 개발한 데 이어 광진공,크레피아 등이 3개 사업에 대한 탐사를 진행 중이다.

아직은 남미 자원개발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차원이지,본격적인 개발단계는 아닌 셈이다.

◆올해 17개 석유ㆍ가스전 분양

원유ㆍ가스도 엄청난 규모다.

페루의 원유 매장량은 60억배럴,천연가스는 24조입방피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광물과 달리 원유ㆍ가스분야에선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리마 남쪽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피스코 지역의 LNG프로젝트 현장에서 만난 유한진 SK에너지 리마지사장(51)은 "이곳은 페루 최대 원유ㆍ가스전인 카미시아 광구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운송한 후 액화시켜 북미 지역으로 수출하는 기지"라며 "SK는 카미시아 광구와 파이프라인 건설,LNG공장에 모두 투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페루 에너지광물부 페드로 가미오 차관(석유ㆍ가스담당)은 "우리는 전체 83개 석유ㆍ가스 광구 중 최근 2년간 24개 광구를 분양했을 만큼 자원 세일에 의욕을 갖고 있다"며 "올해도 17개 광구를 추가 분양하는 데 한국 기업들이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적극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가미오 차관은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가 되었듯이 우리도 '남미의 퓨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현기 한국석유공사 리마지사 과장(39)은 "페루에서도 2006년 대선 당시 자원국유화를 공약으로 내건 좌파 성향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 바짝 긴장했었다"며 "자원민족주의의 무풍지대라고 마냥 마음 놓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리마ㆍ피스코(페루)=오형규 생활경제부장(팀장),현승윤 경제부 차장,박수진(정치부),이정호ㆍ장창민(산업부),이태훈(경제부),김유미(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