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지난 3월 중순 일본 도쿄에선 미국 대사관과 일본여대가 공동 주최하는 흥미로운 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시 심포지엄 주제는 고학력 전업엄마들에게 제2의 기회를 열어주자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에선 이미 유수 대학을 중심으로 고학력 전업엄마들의 성공적 재(再)론칭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번성하고 있음에 주목해 마련된 자리였다.

첫 연사로 나선 캐롤 코헨은 하버드 MBA 출신으로 졸업과 동시에 세계 톱5 안에 드는 투자회사의 컨설턴트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여성이었다.

자신만만했던 그녀는 결혼과 더불어 4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동안 완벽하게 전업엄마로 변신했다.

막내가 5살이 되면서 커리어를 재개하고자 마음먹은 순간,자신이 경험했던 막막함과 좌절감을 잊을 수 없었던 코헨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책 제목은 'Back on the Career Track',성공적 재진입을 위한 7스텝이란 부제가 붙여졌다.

결과는 '대박'.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강연 요청과 컨설팅 요구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여성들의 생애주기상 출산 및 양육 부담이 가장 높은 시기에 일단 자신의 커리어를 유보하는 여성들이 다수 존재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가운데 미국에선 최소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전업엄마 숫자가 230만명에 이르고,그 중 노동시장 재진입을 희망하는 비율이 70~93%에 이른다고 한다.

그 숫자가 190만명에 육박하는데 이 중엔 MBA를 갖고 있거나 전문대학원 졸업장이 있는 전업 엄마들 숫자 또한 무시 못할 수준이란 것이다.

노동시장에 재진입해 경력 단절을 만회하고 제2의 기회를 찾고자 하는 고학력 전업엄마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간파한 미국내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정교한 재론칭(Re-Launching) 프로그램을 개설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고학력 전업엄마들을 위한 코헨의 조언은 다음의 7가지 스텝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라는 것이다.

첫째는 자신이 진정 제2의 기회를 원하는지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는 것이요,둘째는 제2의 기회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엇보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셋째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대안들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보라고 권유한다.

넷째는 자신의 전문성 및 숙련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라 강조하면서,다섯째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해 재진입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으라는 것이요,여섯째는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제2의 기회를 마음껏 즐기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노동시장 상황은 한국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선택의 폭 또한 다양하며 고학력 전업엄마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보다 우호적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재론칭에 성공한 고학력 전업엄마들의 고백인 즉,엄마로서의 경험은 자신이 제2의 커리어를 개척해 가는데 매우 풍성한 보물창고라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 엄마들 움직임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고학력 여성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최근 자녀교육을 이유로 노동시장을 떠나는 여성들 가운데 고학력자가 상당수라는 사실 때문이다.

"집에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아이를 잡겠다 싶어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어느 대기업 이사의 고백에 다수가 공감을 표하고 있는 우리네 상황을 필히 극복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다.